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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농업 혁명의 발생, 환경 재앙 탓이었을까? 개척정신 덕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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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8. 18. 17:50

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6회>
송재윤1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수십억 년에 달하는 지구의 역사에서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한 시기는 실로 짧디짧은 세월이다. 현생인류와 해부학적 구조가 같은 호모사피엔스라는 종(種, species)의 출현은 기껏 20만년 전의 사건이었다. 20만년의 세월 중에서 19만년 동안 지구인들은 수렵·채집의 방식으로 생존해 갔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이 나던 1만년 전부터 지구인들은 비로소 곡물을 직접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하면서 마을을 이루고 일정한 곳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농경과 목축은 지구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놓는 그야말로 혁명적 사건이었다. 지구인들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먹이를 찾아다니는 포식자(predator)이길 포기하고, 대신 자연의 법칙으로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대량의 식량을 생산·확보하는 농업인(農業人, agriculturalist)으로 거듭났다. 그로부터 지구인의 문명사가 시작되었다.

◇ 농경의 발생: 차일드의 오아시스 이론

농경의 발생에 관해선 지금도 크게 두 가지 이론이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그중 한 이론은 기후 변화에 따른 환경 재앙으로 궁지에 몰린 지구인들이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농경의 방법을 개발했다는 '수동적 적응론'이다. 다른 하나는 수렵채집의 오랜 경험으로 경제적 풍요를 누렸던 지구인들이 창의적인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적극적으로 농경의 비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는 '능동적 개척론'이다.

1928년 고든 차일드(V. Gordon Childe, 1892-1957)가 '최고(最古)의 동방(The Most Ancient East'에서 농경의 발생에 관해서 유명한 '오아시스 이론'을 제시했다. 지구인들은 기후 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서 식량 생산 단계로 돌입했다는 주장이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따르면, 지구인들의 농경은 홍적세(Pleistocene, 258만년~1만1700년 전) 말기 최후의 최대 빙하기(Last Glacial Maximum)의 끝자락에서 움트기 시작했다. 왜 하필 그때 농경이 시작됐을까? 차일드는 바로 그 시기 기온이 상승하고 강수량이 급감하면서 아프리카 북부와 중동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덮쳤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극심한 가뭄으로 동식물이 오아시스나 하곡(河谷)으로 몰려들었고, 그 덕분에 지근거리서 다양한 동식물의 여러 종자를 접할 수 있었던 지구인들은 많은 곡물을 찾아내서 개량하고 여러 동물을 길들이며 사육할 수 있었기에 농경·목축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환경 재앙에 부딪혀 멸종의 위기에 처한 인류가 필사적인 생존의 방법으로 농경을 채택했다는 얘기다. 차일드의 오아시스 이론은 오늘날까지도 시사점이 크다. 지금까지도 학계 안팎에서 기후 결정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원시적 농경
나일강 유역의 원시적 농경. Collier's New Encyclopedia, Volume 1 (1921). 공공부문
◇ 어촌 마을에서 이루어진 자발적인 농업실험

1950년대 미국 고고인류학과 지리학계에서는 차이드의 오아시스 이론을 정설로 받아들였다. 다수 학자는 기후 변화와 문화적 변화의 상관성을 밝히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바로 그러한 학계의 정설에 맞서서 미국 지리학의 태두였던 칼 사우어(Carl O. Sauer, 1889-1975)는 농경의 발생에 관해서 지구인의 능동적 개척정신을 강조하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사우어는 생존의 위기에 처한 오아시스가 아니라 경제적 풍요를 누리던 어촌 공동체에서 실험정신으로 충만한 창의적인 집단이 본격적인 생물학적 실험을 통해서 농경의 비법을 터득했다고 주장한다. 바다에서 풍족한 식량을 마련한 어촌 마을의 지구인들이 해안가 숲에 경지를 내서 다양한 식물의 재배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농경의 기술이 생겨났다는 주장이다.

사우어의 이론은 1952년 발표된 '농경의 기원과 확산(Agricultural Origins and Dispersals)'에 상세히 제시되어 있다. 그는 주장한다. 농경과 같은 고도의 기술은 절대로 갈수록 극심해지는 만성적 식량 부족에서 생겨났을 수는 없다고. 왜냐면 기근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먼 미래에나 먹게 될 더 좋은 식량을 개발하는 "느리고도 한가한 실험의 단계(the slow and leisurely experimental steps)"를 차근차근 밟아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굶주림에 몰린 사람들이 황급히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 기근 식량(famine foods)은 지구인들이 농경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재배하게 될 고영양의 고귀한(ennobled) 곡물들과는 전혀 다르다.

인위적 선택을 통해 더 좋은 작물을 개발하는 활동은 굶주림과 결핍이 아니라 경제적 여유와 창의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 점에서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는 일반론은 농경의 발생엔 적용될 수 없다.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곤궁하고 비참한 사회는 창의적이지 못하다. 왜냐면 그런 사회는 반성과 실험과 토론을 위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 농경의 발생은 물질적 풍요와 창조적 여유에서

사우어는 지구인들이 농경의 비법을 터득하기 위해선 다양한 기후에 다양한 식물들이 모여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식적으로 유전자 풀(genetic pool)이 넓어야만 농업적 실험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그는 농경이 홍수의 피해가 심한 깊은 계곡이나 억센 풀들이 땅을 덮고 뒤엉킨 곳이 아니라 빽빽이 나무들이 들어찬 숲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베고 태우는(slash and burn)" 방법으로 원시의 재배자들은 쉽게 기름진 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석기 유물들을 살펴보면, 사냥을 위해 날카로운 돌침이나 돌칼을 쓰는 사냥꾼 무리보다는 숲에 살며 나무를 베기 위해 돌도끼를 쓰는 집단이 농부들의 조상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그는 농경의 발생을 위해선 한곳에 눌러앉아 사는 집단이 생겨나야 한다는 일반론을 수용한다.

화전
숲을 태워 밭을 일구는 원시적 화전(火田, slash and burn)농법의 지혜. Frank Vassen, 공공부문
고대의 환경에서 농업적 실험에 필요한 경제적 여유와 문화적 창의성을 갖춘 집단이 과연 어디에 모여서 눌러앉아 살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 사우어는 바로 고대의 어업공동체가 긴 세월에 걸쳐 농경을 실험했던 주체들이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1920년대부터 그는 이미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배를 타고서 아덴만을 건너 아라비아반도로 나아간 고대의 지구인들이 해안선을 따라서 호주까지 이동했다는 과감한 주장을 펼쳤다. 그 주장은 지금까지도 살아남아서 연구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냥꾼들이 해안이나 강가로 가서 낚시꾼들이 된 후,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된 낚시꾼들이 해안가 숲에 경지를 내서 다양한 식물의 재배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농경의 기술이 생겨났다. 농경이란 인류사 최대의 혁명적 사건이 지구인들의 실험정신과 창의성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다. 요컨대 농경은 경제적 궁핍이 아니라 물질적 풍요, 심리적 압박이 아니라 창조적 여유에서 비롯됐다.

차일드의 오아시스 이론은 지구인들은 농경에서 불평등과 착취가 시작되었다는 문명 비판론을 전제한다. 반면 사우어의 어촌 발생설은 농경의 시작은 역사적 진보라는 문명 긍정론이라 할 수 있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학계의 첨예한 논쟁이지만, 그 밑바탕엔 더 본질적인 인간론과 세계관의 대립이 있음을 보여준다. <계속>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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