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이경욱 칼럼] 자산가 ‘엑소더스’ 유감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2.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812010006328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8. 12. 18:13

이경욱 대기자 사진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자산을 제법 모은 지인이 최근 유럽연합(EU) 회원국의 한 곳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는 우리나라의 상속세나 증여세 부담이 너무 커 이를 피하려 이민을 결심했다고 했다. 자녀에게 자산이 상속 또는 증여되는 과정에서 최고 60%에 달하는 세율 탓에 자산 절반 이상 줄어드는 현실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예를 들면서 그곳은 자산 200억원까지는 상속세가 없다고 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중복과세'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자산에 대해 취·등록세, 양도소득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을 이중삼중으로 내는데, 여기에다 증여세나 상속세를 내는 것은 지나친 중복과세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이나 캐나다·호주 등 우리 국민 선호 이민 대상국을 선택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EU 회원국 국민의 지위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어서 택했다"고 말했다. 즉, EU 회원국 가운데 한 곳으로 이민을 가면 EU 회원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각국이 공동으로 구축해 둔 사회안전망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국에서 지내는 게 괜찮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인터넷이 고도로 발전돼 있어 한국의 소식을 실시간을 접할 수 있기에 문제 될 게 없다"고 답했다.

또 다른 음악가 지인은 최근 스페인으로 이민을 떠났다. 가족과 함께 스페인으로 여행을 갔다가 그곳이 마음에 들어 눌러앉기로 했다. 먼저 부인과 두 자녀를 마드리드에 보냈다. 휴가를 내 그곳에서 집과 자동차를 구입하는 등 가족 정착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기후가 온화하고 사회 분위기가 한국처럼 팍팍하지 않아 가족 모두가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한국에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언젠가 자신도 마드리드에 정착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들어 한국을 떠나 타국으로 이민을 가는 자산가, 전문직 종사자들이 늘고 있는 분위기인 것 같다. 실속 측면에서 과도한 상속세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삶의 질 차원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찾아 고국을 떠나는 이들이 증가하는 듯하다. 이런 추세는 외국 연구 분석에서도 뒷받침된다. 영국 투자이민 컨설팅 기업 헨리&파트너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한국에서 유동 자산 100만 달러 이상 부자 1200명이 순유출될 것이라고 한다. 무슨 근거로 이런 전망을 내놓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눈여겨볼 만한 전망이다.
이 기업 발표 부자 순유출 상위 10위권 국가에는 공통점이 있다. 권위주의 정부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치안이 불안하거나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라는 점이다.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등이 그런 나라다. 눈에 띄는 예외가 2위 영국과 4위 한국이다. 이 두 나라만의 공통점이 있다.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부과한다는 점이다. 영국은 32만5000파운드(약 5억7000만원)가 넘는 자산을 물려받는 사람에게 초과분의 40%를 상속세로 부과한다. 영국보다 더한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은 상속 재산에 최고 60%의 세율을 적용한다.

부자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면 정부 세수가 늘어나고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부자들이 세금을 피해 다른 나라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사업가나 자산가들이 역외금융 등을 이용해 국내 자산을 빼돌렸다가 적발되는 경우가 증가하는 추세다. 국세청에 따르면 최근 들어 투자수익을 부당 반출한 사모펀드 및 역외 편법 증여한 자산가, 사업구조를 위장해 국내소득을 유출한 다국적기업 소유자 등 국내 자산가들이 세금 회피를 위해 해외를 탈세 수단으로 삼으려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는 탈세 자금으로 외국에 주택 27채를 매입하고 취득사실을 국내에 미신고했으며 임대소득까지 회피했다. 자산가들이 비트코인 등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사례는 이제 보편적 현상이 됐다. 자녀 명의 역외보험상품의 보험료 수십억원을 대신 내주거나, 부동산 개발사업 성공을 앞둔 현지법인 주식을 자녀에게 넘겨 수백억원의 이익을 편법 증여한 자산가도 적발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자산을 역외로 이전시키는 행위가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방탄소년단을 탄생시킨 방시혁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340억원짜리 대저택을 구입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자산가 부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하는 사례다.

자산가의 엑소더스는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 가속화하는 글로벌화로 자산가들이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 떠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삶의 질과 고율의 상속세 및 증여세를 피해 해외에 자산을 파킹하는 자산가와 전문직은 늘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의 엑소더스를 방치할 게 아니라 그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도록 상속세제 개편 등 사회적 여건을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