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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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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4. 04. 18. 15:23

남민전 사건 연루돼 장기간 망명…빈곤층 위해 장발장은행 설립
홍세화 연합뉴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연합뉴스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한국 사회의 변화를 촉구한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 18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향년 77세.

장발장은행과 지인 등에 따르면 홍 은행장은 이날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그는 지난해 2월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난 홍 은행장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다니다 자퇴했다. 같은 대학 외교학과에 다시 입학했으나 1972년 민주수호선언문 사건으로 제적됐다가 복학하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 1977년 졸업했다. 이후 무역회사에 취업해 유럽 주재원으로 일하다가 이른바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프랑스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택시 운전이나 관광객 안내 등을 했다.

그는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1995년 에세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창작과비평사)를 출간해 '톨레랑스'(관용) 개념을 제시하며 한국 사회의 변화와 성찰을 촉구했다.
홍세화는 2002년 귀국해 한겨레신문 편집국 기획위원을 맡는 등 활발하게 저술·논평을 하며 톨레랑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공무원 노조 탄압 반대 시위를 하고 제주 해군 기지 백지화를 요구하는 등 정치적 의사 표명을 했다. 2011년 진보신당 대표로 선출돼 다음 해까지 당을 이끌었다.

2015년에는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형편이 안 돼 노역할 위기에 놓인 이들에게 최고 300만원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을 설립해 은행장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1999), '아웃사이더를 위하여'(2000),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2002), '불가사리'(2003), '빨간 신호등'(2003), '미안함에 대하여'(2020), '능력주의와 불평등'(2020) 등을 남겼다.

빈소는 신촌 연세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다.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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