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교훈, 친러 정권 수립 시도 위험성
유럽, 냉전방식 군비경쟁 돌입 전략적 반격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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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 약화: 소련 블록을 전복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을 쓴 작가인 그레고리 미트로비치는 25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 ‘푸틴은 코리아에 대한 스탈린의 무모한 오판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이 승리 전략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엄청난 역풍을 일으킬 수 있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 “푸틴, 우크라이나 침공시 김일성의 남침 승인 스탈린이 처한 역풍 직면할 것”
미트로비치는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는 푸틴 대통령의 목표가 여전히 불투명하다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은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한 침공 계획을 승인했을 때와 같은 교훈인 엄청난 결과를 필연적으로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련군에 의해 훈련되고 그 장비로 무장한 북한군의 침공은 서방을 충격에 줬고, 미국의 국가 안보전략을 전환시켜 대규모 동원, 수십년에 걸친 핵 군비 경쟁과 냉전 갈등의 영구적인 군사화를 초래했다고 미트로비치는 설명했다.
그는 한국전쟁이 미국의 국방예산이 국내총생산(GDP)의 15%를 넘어서게 했고, 급속하게 증가하는 핵을 비축한 강력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의 핵심으로서 유럽에 수십만명의 미군을 배치해 이후 40년 동안 지속된 글로벌 군사 대결을 공고히 했다며 많은 전문가가 이 군비 경쟁의 비용이 1980년대 말 소련 몰락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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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로비치는 한국전쟁이 미국의 대(對)냉전 전략이 정치·경제 영역에서 군사 영역으로 전환된 시발점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침공 전 미국 전략 기획자들은 군사력을 억제력으로 여겼고, 진정한 전쟁터를 정치·경제 전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봤으며 소련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대신 1948년 2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민주주의를 붕괴시키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정치·경제적 대혼란을 초래한 대규모 정치적 전쟁 작전을 통해 유럽을 계속 전복시킬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미트로비치는 설명했다.
해리 트루먼 당시 미 행정부는 이 전략 모델을 한국에도 적용해 스탈린이 침략을 승인하지 않고, 이승만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반란을 촉발하려는 북한의 점점 더 커지는 노력을 지원할 것이고 믿었으며 이는 딘 애치슨 당시 미 국무장관이 1950년 1월 12일 워싱턴 D.C.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남한을 제외한 채 ‘알류샨 열도 ~일본 ~오키나와((沖繩)~필리핀’을 연결하는 라인을 미국의 극동 방위선이라는 연설로 이어졌다.
애치슨의 연설을 남한 침공의 청신호(green light)로 본 김일성은 북한군이 미국이 대응하기 전에 서울을 3일 만에 점령하고, 단 수주 내에 한반도를 통일할 것이라고 약속해 1950년 4월 스탈린의 승인을 받았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북한의 침략 즉시 주일 미 8군을 한반도로 파견하고, 북한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대규모 폭격 작전을 명령했다.
이어 미국은 35만명 이상의 군대를 한반도에 배치했고, 북한과 이후 중공군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을 감행했다. 아울러 투르먼 행정부는 중국공산당 정부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선출하는 것을 거부한 것에 항의해 소련이 안보리 회의 참석을 보이콧한 것을 이용해 한국전쟁에 대한 유엔의 군사 개입에 대한 안보리 이사회 승인을 얻어냈다고 미트로비치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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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로비치는 한국전쟁의 교훈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친러 정권 수립을 기정사실로 하려는 시도는 위험한 작전이고, 한국전쟁 이후와 같이 나토가 군사력을 확장하고, 동유럽 동맹에 대한 방위 공약을 확고히 해 유럽을 냉전 방식의 군비 경쟁으로 빠져들게 하는 극적인 전략적 반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한국전쟁이 미군의 영구적인 유럽 주둔과 수십년 간의 핵무기 경쟁을 초래할 것과 같이 푸틴의 행동은 나토가 러시아 국경에서 재무장하게 하고, 러시아를 경제적 외톨이(pariah)로 만들어 러시아의 안보를 손상할 수 있다며 이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그의 힘 과시 전략(power play)을 통해 회피하려고 했던 바로 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