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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 선거공약과 실제 정책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더라도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같은 전망은 측근들에 대한 트럼프의 장악력이 1기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높아진 사실을 간과한 주장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요구하면서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하고, 전략자산을 한반도로 전개할 때마다 청구서를 한국에 내밀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만약 미국이 주한미군을 감축하겠다고 하면 한국 국민들의 자체 핵무장 지지 여론은 정부나 정치권이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것이다.
올해 10월 15일 트럼프는 블룸버그통신 존 미클스웨이트 편집국장과의 대담에서 "내가 거기(백악관)에 있으면 그들(한국)은 (주한미군 주둔비용으로) 기꺼이 연간 100억 달러(13조6100억원)를 지불할 것"이라며 "그들은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고 말했다. 100억 달러는 올해 한국과 미국이 타결한 2026년 방위비 분담금(1조5192억원)의 9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물론 트럼프가 한국측에 방위비 분담금으로 첫해부터 100억 달러를 내라고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가 이미 합의한 금액보다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증액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한편,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그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과시해왔다. 그런데 김정은은 과거에 미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해왔다. 트럼프 당선인도 한미훈련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면서 그들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사거리 제한 등을 끌어내기 위해 한미연합훈련이 축소되거나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2030년경에 최대 300개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이 같은 사실상의 북핵 용인 정책은 한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글로벌리스트(globalist)들'과는 다르게 비전통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트럼프는 한국의 핵무장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여왔다.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후인 2016년 트럼프 당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는 한국과 일본이 북한과 중국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대신 스스로 핵을 개발하도록 허용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리고 2017년 7월 미중 정상회담 땐 시진핑 주석이 대북 제재 강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자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리면 어떻게 될 것 같냐"며 반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올해 미국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들인 빅터 차, 수미 테리 그리고 전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도 트럼프는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트럼프의 재선은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안보에 위기가 될 수 있고 다시 만나기 어려운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내년에 있을 (가능성이 큰)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김정은이 거들떠보지도 않을 '한반도 비핵화·평화정책'을 추구하거나 미국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한국의 안보에는 희망이 없다. 반면에 한국이 국가생존을 위해 자체 핵보유가 반드시 필요하고 그것이 미국의 북한 관리와 대중 견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한국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와 안정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요구한다면, 한국의 새 대통령은 반대급부로 일본과 같은 수준의 핵잠재력 확보를 위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북핵 위협에 맞서기 위해 자체 핵 보유가 필요하므로 미국의 묵인과 지원을 바란다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1975년에만 해도 세계 1위 상선 제조국이었던 미국이 2023년엔 세계 19위로 추락했다. 이처럼 미국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트럼프는 부유한 한국이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자강은 트럼프도 원하는 바일 것이다. 트럼프를 상대로 당당하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한국의 자체 핵보유와 한미동맹의 핵동맹으로의 진화 필요성을 설득할 수 있는 담대한 지도자가 내년 한국 대선을 통해 출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 (자강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