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스캐닝 제작·AI 기술 등 적용
'다품종·소량 생산' 필요성 대두
한샘·아모레퍼시픽 등 업계 선도
다문화 국가 속 글로벌화 가속화
라면·소주 등 외국인 관심 높아져
K-정체성 위해 전통 요소 담아야
러시아전쟁·미국대선·중국의 움직임 등…. 냉혹한 현실 속에서 기업들 역시 급변하는 환경에 맞춰 자신을 카멜레온처럼 변신시켜야만 한다. 이에 아시아투데이는 유통 전문가들을 통해 기업들이 당장 준비해야 할 어젠다로 토핑경제와 그라데이션K를 제시하고자 한다.
토핑경제는 소비자가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제품 즉, 자신이 꾸밀 수 있는 제품을 뜻한다. 그라데이션K는 다문화 국가에 반영될 소비문화다. 결국 시장에서의 성패는 이 두 가지 사안을 얼마만큼 활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소비자가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기는 '토핑경제'
토핑경제의 확산은 맞춤형 제품과 모듈형 소비의 부상으로 연결된다. 3D 스캐닝을 통해 안경을 제작하는 '브리즘', 사용자가 자유롭게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모듈형 가구를 출시하는 '한샘' 등이 대표적이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보편성을 중시하던 시대에서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이 존중받는 시대로 변화하면서, 시중에 나오는 상품에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려는 수요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면서 "보다 많은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주문'과 '생산'이 결합한 서비스를 내놓는 기업이 주목받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최철 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다양한 선택의 폭을 마련하되, 편의를 높이는 전략이 중요하다"며 "예컨대 핸드백에 어떤 액세서리 소품을 조합하는 것이 좋을지는 전문가들이 가장 잘 알 거다. 이를 기반으로 상품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소비자들로부터 더 큰 만족을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이동일 한국유통학회 회장(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은 "아무리 소비자들의 취향이 세분화되고 있어도, 공통 취향을 갖고 있는 이들도 많이 있다"며 "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한 뒤 상품을 모듈화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즉 '다품종·소량 생산' 전략이 필요하단 뜻"이라고 말했다.
이미 LX하우시스는 시스템 창호 'LX Z:IN(LX지인) 창호 유로시스템9'를 통해 공간에 맞춰 고객 취향대로 창호 프레임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 고문(동덕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장)은 "기업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소비자와 활발히 소통하고, 제조나 유통 과정 속에서 이들의 니즈를 그때그때 반영한다면 매출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특히 생성형 AI(인공지능) 기술이 고도화되며 기업과 소비자 간 소통은 더욱 원활해졌으며,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도 한결 쉬워졌다"며 "AI 기술이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 제공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 셈"이라고 덧붙였다.
일례로 아모레퍼시픽의 '톤워크'에서는 AI가 개인별 피부톤을 진단해 소비자가 자신에게 딱 맞는 최적의 컬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박정은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소비자들은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우선시하는 소비 패턴을 보인다"며 "이에 발맞춰 개인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통 기업이 시장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세계화와 로컬화로 서로 빠르게 섞여가는 '그라데이션K'
외국인 인구 비중이 5%에 육박하는 한국은 이제 '다문화 국가'다. 유통업계는 세계화와 로컬화가 서로 빠르게 섞이면서 현재의 K는 0과 1 사이에서 그라데이션이 진행 중이라고 진단한다.
최 교수는 "다문화에 대한 거부감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많이 옅어지는 추세"라며 "그라데이션K와 관련된 소비문화와 트렌드가 확산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최근 글로벌화가 가속화하며 K푸드·K뷰티·K패션의 정체성이 많이 옅어지고 있다"며 "'K'라는 단어를 붙이기 위해선 한국의 전통적인 색채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다못해 포장지라도 한국적인 요소를 담으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처럼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제품과 외국인 취향에 맞게 변형된 퓨전 제품들이 모두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한류 콘텐츠를 통해 한국 배우들이 떡볶이나 김치, 라면을 먹는 장면을 접한 소비자들이 K식품을 찾기 시작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의 인기로 올해 상반기 기준 해외에서만 62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삼양식품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김 고문은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단순히 국내뿐만 아니라 타깃 전체를 해외로 봐야 한다"며 "이제는 제품을 생산할 때 글로벌화에 더 집중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소주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K콘텐츠가 확산하면서 소주 수출액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2023년 소주 수출액은 1억141만 달러로, 2013년 이후 10년 만에 1억 달러를 재돌파했다. 하이트진로는 2030년까지 소주 해외 매출 5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지난해 소주 수출액은 14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0% 늘었다. 롯데칠성음료의 수출액 중 미국 비중은 매년 빠르게 늘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46%씩 성장했다.
이 외에도 농심의 라면은 인도네시아 할랄(무슬림이 사용하거나 소비되도록 허용된) 인증을 받으면서 동남아시아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비건용 채식라면 순라면·신컵누들·너구리우동 등이 인증을 받은 제품들이다. 화장품 ODM(제조자개발생산) 기업 코스맥스는 할랄인증을 받은 원료로만 생산된 할랄 향수로 할랄 시장과 동남아시아 향수 시장을 공략 중이다.
이 회장은 "K콘텐츠의 글로벌 확산으로 한국 제품에 대한 외국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다"며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한국 소비자뿐만 아니라 외국인 소비자들의 니즈도 파악하고, 지속적으로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