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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명 칼럼] 국회 연금특위, 여·야·정 협의체 구성해 ‘자동안정장치’ 논의하길

[윤석명 칼럼] 국회 연금특위, 여·야·정 협의체 구성해 ‘자동안정장치’ 논의하길

기사승인 2024. 08. 1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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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서 평가한 한국의 연금개혁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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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고구마 먹다 체한 느낌'이던 연금논의에 돌파구가 열릴 것 같다. 대통령실에서 연금개혁 방향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어서다. 지난 5월의 엄청난 정치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22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하자는 윤석열 정부의 결정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는 칼럼을 필자가 본지에 썼다('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단 0.1%포인트만 올려도 개악인 이유' 6월 17일). 필자 판단이 이렇다 보니, 지지부진한 22대 국회의 연금논의가 꽤 답답했다.

조만간 대통령이 직접 연금개혁안(또는 방향)을 발표한다고 한다. 언론 보도대로라면, 우리나라의 연금개혁 논의에서 가장 진일보된 개혁안이 발표될 것 같다. 연금재정 자동안정장치(Built-in-stabilizer)를 도입하겠다고 해서다. 자동안정장치란 연금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요인, 즉 출생률 감소, 평균수명 증가, 경제성장률 둔화를 재정안정에 연동시키는 방식을 의미한다.

스웨덴이 1999년에 최초로, 독일과 일본은 2004년에 도입했다. 현재 OECD 회원국 70%가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했다. 지금 도입해도 20년 이상 늦었다. 출생률이 극단적으로 낮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은 자동안정장치 도입이 가장 시급한 나라다. 만시지탄이지만 제대로 연금개혁 방향을 설정했음을 높이 평가한다. '개악을 개혁으로 포장'한 개편안을 받으라는 언론·정치권·전문가들의 압력을 견뎌낸 뒤 제시하는 개혁 방안인지라 더욱 의미가 크다.

이제 우리 현실에 부합하게 제대로 도입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할지라도 당장 19.8% 보험료를 걷어야 후세대로의 부담의 전가가 없다.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소득대체율을 대폭 삭감해야만 재정안정 달성이 가능하다. 이처럼 한술에 배부르기 어려운 우리 현실을 고려하면서 자동안정장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2003년 1차 국민연금 재정계산부터 2023년 5차까지 필자는 매번 재정계산위원회의 재정안정방안을 담당했다. 1차 재정계산 '제도발전 전문위원회' 간사위원이었던 필자는, 치열한 논쟁 끝에 추계기간 70년과 적립 배율 2배(72년 후까지 지급할 연금액 확보를 의미)를 재정안정지표로 설정할 수 있었다. 지금도 아쉬운 대목은 필자가 강력히 주장했던 80년이 아니라, 그보다 10년 앞당겨진 70년으로 재정추계기간이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일생 주기 관점에서 재정 상태를 평가하기에는 기간이 많이 부족해서다. 우리가 연금을 모방한 일본은 2003년에 이미 100년의 추계기간을 설정하고 있었던 터라 더욱 안타깝다.

이러한 아쉬움이 있다 보니, 2003년 10월 정부가 국회에 재정안정방안을 제출한 후, 제도발전전문위원회 위원인 KDI 문형표 박사(전 보건복지부 장관)와 결의했다. 스웨덴이 1999년에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했으니, 5년 뒤인 2008년의 2차 재정계산에서 우리도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하도록 하자! 비장한 마음으로 약속했었다.

우여곡절 끝에 2007년에 가서야 국민연금 개혁이 이루어지다 보니, 2008년 2차 재정계산에서는 추가적인 개혁 동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2차 재정계산 최종회의에서, "2013년 3차 재정계산에서 자동안정장치 도입을 반드시 논의한다"는 내용을 수록하는 조건으로 자동안정조치 논의가 종결되었다. 정작 2013년 3차 재정계산 때는 기초연금 도입 관련 논쟁으로 국민연금 이슈는 뒷전으로 밀렸다. 필자가 3차 재정계산에서 자동안정장치 도입을 강하게 주장했었음에도 위원회의 동의를 얻지 못했던 배경이다.

이후 상황은 더 나빠져, 2018년 4차 재정계산에서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재정 불안정이 심각하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연금 지급률을 더 높이자고 해서다. 이 와중에서도 필자는 핀란드식 준(準)자동안정장치 도입을 제안했다. 핀란드는 생애 지급하는 연금총액은 같으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 기대여명계수(Life-expectancy Coefficient)를 활용해 늘어나는 만큼을 매월 연금지급액에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OECD 사무국 직원 4명이 '한국의 높은 노인 빈곤율의 실상을 분석'한 필자의 '다양한 노인빈곤지표 산정에 관한 연구(Ⅰ)' 내용 확인차 2020년 1월 10일 세종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방문했다. 한국 노인이 보유한 자산을 고려하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20% 수준 이하로 대폭 낮아진다는 필자의 연구내용에 덧붙여, 핀란드식 준(準)자동안정장치를 반영한 재정안정방안도 설명했다.

설명을 듣던 빈센트 코엔(Vincent Koen) OECD 경제검토국 부국장이 '퍼펙트'라고 했다. 한국 상황에 적절한 재정안정방안이라 판단했던 것 같다. 그 자리에는 파리 OECD 대표부에 파견된 기획재정부 과장도 있었다. 당시 코엔 부국장은 필자에게 이렇게 좋은 안을 왜 한국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포퓰리스트 정부'라서 그렇다고 답변하는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필자가 그렇게 칭한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재정 불안정이 심각함에도 연금 더 주는 안들을 국회에 제출'해서였다.

2023년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도 필자는 핀란드식의 준자동안정장치 도입을 제안했다(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자료집. 491쪽). 5차 재정계산에 따르면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고 보험료를 15%까지 올려도 재정안정 달성이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준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해 보험료 2% 포인트 정도를 인상하는 효과, 즉 보험료는 15%까지만 인상하나, 실질적으로는 17%의 인상 효과가 있는 재정안정방안을 제안했다.

문제는 필자가 제안한 안조차도 완전한 재정안정 달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 실상을 제대로 알린 뒤에,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 강도의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실이 언급한 자동안정장치에 기금운영 수익률 제고가 포함되는 것 같다고 한다. 외생변수인 기금운용 수익률을 자동안정장치와 결부시킨다면 국제적인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재정안정 강도가 떨어지더라도 제대로 된 자동안정장치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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