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서지문 칼럼] 정청래가 허물 벗을 무인도는 어디?

[서지문 칼럼] 정청래가 허물 벗을 무인도는 어디?

기사승인 2024. 07. 01. 19:18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2024060601000474100029741
서지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지난주는 온 나라가 정청래가 토해낸 오물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었다. 북한이 날려보낸 오물 풍선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차마 인간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막말을 민의의 전당, 국가의 중추인 의회에서 토해내는 작자가 인간인가? 하도 격분해서, '삼국지'에 나오는 무수한 인물들 중에서 정청래 같이 무지막지한 인물이 있었던가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데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천 명의 각양각색의 인물 중에서도 그같이 독사의 눈에 시궁창 입을 가진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겨우 생각해 낸 것이, 자기를 중용한 황제를 배반하고 무수한 사람을 오락 삼아 죽였던 동탁이었다. 그러나 세부적인 유사성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정청래가 온 국민을 분노케 한 만행을 저지르고 나서 최강욱의 유튜브 채널에 나와서 희희낙락하면서 자기의 만용을 무용담처럼 떠벌리는 것을 보고 노여움을 넘어 절망을 느꼈다. 자기가 여당 의원 3명을 내쫓기 위해서 야당의원 장경태와 짜고 그를 먼저 퇴장시키고 그다음에 여당 의원들을 거리낌 없이 내쫓았다며 스스로 대견해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횡포와 막말이 법사위원장의 자리를 차지한 자신의 정당한 권리라고 확신하는 모양이다. 그런 그가 버티고 있는 22대 국회는 검투사 경기장이 될 것이다.

정청래로 인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멸을 느낀 것은 그 자리에 출석했던 증인들만이 아니다. 우리 국민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가 점점 천박하고 거칠고 품위를 잃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그래도 아직 193개의 UN회원국 중에서 중위권은 될 만한 품격은 유지하는 나라로 인식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라는 자가 그토록 막 돼먹은 언행을 쏟아내니 앞으로 이 나라를 이 시궁창에서 어떻게 건져내야 할지, 분노와 무력감에 비통할 뿐이다.

정청래는, 과실이 증명되지 않았지만 밝혀질지도 모르는 관리나 장성들을 꾸짖고 혼내주었으니 자기가 정의의 사도요 도덕의 수호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가 행한 것은 의회 모독이고 민주주의의 파괴이며 인격살해 행위다. 그에게 도덕감정이란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우리는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인간의 이기심에 국가경제를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아는데 그것은 애덤 스미스가 모든 인간에게는 이기심과 함께 도덕감정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도덕감정론〉에서, 사람은 누구나 도덕감정을 타고났으며 세상을 경험하면서, 자기의 자신의 행동이나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나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을 차차 가다듬어서 내면에 도덕적으로 '공평한 관찰자'를 지니게 되고 이 공평한 관찰자는 자신이 도덕준칙을 위반했을 때 내적 수치심과 자책의 고통으로 벌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일이 결코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이 공평한 도덕적 관찰자가 인간 사회가 도덕적으로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신이 우리의 내면에 심어놓은 대리인이라고 애덤 스미스는 말했다. 칸트는, 너무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행동 원칙이 우주의 모든 사람의 행동 원칙이 되어도 좋게끔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청래에게 이번 법사위원회 해프닝은 공들여 기획한 이벤트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는 국격을 파괴하고 인간존엄성을 모독하는 그 이벤트를 기획함에 있어서 법률에 기대어 자행할 수 있는 위원장 권한의 극한점을 확인해 보았을 뿐, 자신이나 동료의원들에 대한 인격존중의 의무, 그리고 국민의 도덕과 예의의 감정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공평한 관찰자'를 내부에 지니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22대 국회에는 그 같은 도덕불감증의 인간이 미증유로 많은 것이 분명하니, 정말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허울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70~80년 동안에 수천 년의 가난과 압제와 부패의 질곡에서 탈피해서 삶의 제반 조건이 몰라보게 달라졌고 문명국의 국민으로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최상의 축복을 맛보았다. 이제 정치만 제대로 되면 모두가 편안하게, 나날이 발전하는 사회에서 살 수 있다.

그런데 나라가 좌파에게 장악당하면서 제도와 의식이 퇴행하고 살벌하고 거친 사회분위기 속에서 예의나 배려는 멸절될 위기에 처했다. 특히 하이에나 떼에게 점령당한 국회는 우리나라의 도덕적 황폐화를 이끌고 있다. 이제 곧 '예의'나 '인격', '존중'이나 '배려'는 고어(古語)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될 것 같다. 정청래는 후손으로부터 그 과정을 앞당긴 공로로 표창을 받을까, 아니면 나라를 망친 죄인으로 단죄를 받을까?

며칠 전 서울역사박물관이 주최하는 '동심'이라는 특별전시를 관람했다. 1950년에서 1970년 사이, 나라의 경제가 몹시 어려웠을 때 당시의 대표적 사진작가 임응식, 정범태, 한영수, 홍순태, 황현만 등이 찍은 어린이들의 사진인데 물지게를 져 나르는 어린이, 양푼에 밥을 먹는 어린이, 판자촌에서 공깃돌이나 고무줄뛰기를 하는 어린이, 한강에서 수영하고 스케이트 지치는 어린이 … 모든 놀이에 열중해서 여념이 없는 순진하고 밝은 어린이들의 모습이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유년의 기억을 돌이키는 동요가 흘러나와서 마음을 적셨다. 옹달샘, 산토끼, 꼬마눈사람, 나비야, 다람쥐, 등등 … 그리고 '새 나라의 어린이'! 우리 모두 어린 마음에 새 나라의 어린이가 되려고 다졌던 각오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 나라의 어린이는 서로서로 돕습니다.
욕심쟁이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 나라의 어린이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서로 믿고 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 나라의 어린이는 쌈을 하지 않습니다.
정답게들 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우리가 어릴 적부터 이토록 소중하게 가꾼 나라를 살벌한 횡포와 불신의 나라로 만들려는 인간은 무인도에서 1년간 자숙하며 인간이 되기를 배워야 한다. 그의 동료의원이 제안한 자세가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서지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