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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정의 컬처&] 가장 한국적인 콘텐츠의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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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5. 12. 18:41

2014년 필자가 회사를 창업하고, 처음 진행했던 일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그룹 팀랩의 한국 전시인 '팁랩월드(Teamlab World)'를 기획하는 일이었다. 2015년 한국에 처음 선보일 팀랩월드의 기획을 위해 전 세계의 팀랩 전시관을 둘러보고, 팀랩팀들과 함께 미팅을 진행하면서, 필자는 한국형 디지털 전시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자본금 1000만원으로 시작한 작은 영상 회사였기에, 자체적으로 디지털전시관을 구축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큰 꿈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그저 '꿈'이었던 이상은 '현실'이 되었고, 아직 팀랩과 비교할 수준은 못 되지만 자체 디지털전시를 이어가는 한국의 몇 안 되는 회사 중 하나가 되었다.

전 세계 디지털 전시 회사를 꼽는다면 일본의 팀랩과, 프랑스의 컬처스페이스, 캐나다의 모멘트팩토리를 들 수 있다. 일본의 팀랩은 스스로 아티스트 그룹이라 칭하며, 순수 창작 콘텐츠로 전 세계에 창의적인 미디어아트를 선보이고 있다. 어떤 콘텐츠든 한눈에 '팀랩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디지털 콘텐츠 분야의 한 장르를 구축했고, 누가 보아도 '일본'스러운 콘셉트와 철학을 담고 있다.

프랑스 컬처스페이스의 가장 큰 무기는 명화가 가진 원작의 힘이다. 그들은 고흐, 모네, 클림트 등 가장 대중적이며 뛰어난 명화를 미디어아트로 제작하여 다양한 나라에서 전시를 이어가며,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런 명화를 활용한 디지털 전시는 그 외의 다른 나라에서도 수차례 시도되었으나, 고전 예술에 대한 높은 이해와 압도적인 규모 면에서 컬처스페이스는 아직까지 단연 최고의 자리를 견고히 지키고 있다.

캐나다의 모멘트팩토리는 미디어테마파크 분야에서 전 세계 최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캐나다의 대자연을 캔버스 삼아 자연과 어우러진 미디어파사드와 관객이 상호작용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통해 동화같은 공간을 운영하고 있고, 야외 미디어아트를 구축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모멘트팩토리를 모방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중국의 약진도 두드러지고 있다. 아직까지 다른 나라에 비해 예술성이나 작품성은 떨어지지만, 가격 경쟁력으로 세계 최고 수준인 LED를 활용해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가장 선명하고 높은 해상도의 실감나는 익스트림 VR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이런 회사들은 그 나라의 문화의 정통성을 이어가며, 단순히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 들에게 자국의 문화와 특성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다양한 미디어파사드와 디지털전시가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해외로 수출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이렇다 할 콘텐츠는 없다. 국내에서 제작된 디지털전시 콘텐츠는 프랑스의 컬처스페이스와 같은 방식인 고전 명화를 활용한 사례, 일본 팀랩과 같이 자연을 소재로 구성한 미디어아트, 그 외 디지털 사파리나 야간 조명 등의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으나 그 어디에도 한국의 문화와 특성을 대표하는 '한국다움'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인천공항이나 광화문, 유적지 등에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으로 제작된 한국 콘텐츠를 선보이는 사례는 많아지고 있으나, 해외 사례처럼 지속가능한 문화콘텐츠로 제작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필자 역시 처음 디지털전시를 구축할 때, 한국 고유의 문화를 담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었지만, 상업성이 없는 콘텐츠에 큰 비용을 투자하는 것은 너무 큰 리스크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한국의 수많은 박물관과 전시관 등에서 한국적인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사용한 예산만 해도 어림잡아 수천억은 될 것이다. 이러한 콘텐츠는 모두 무료로 운영되기 때문에 대중성, 상업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형태로 제작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디지털 혁신 전략과 무형문화재 보존 및 진흥에 관한 법률 9장 48조(무형문화 기록을 디지털 자료로 구축하여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도록 하여야 한다)에 따라 앞으로도 한국 문화의 디지털자원화를 위한 예산과 지원은 계속될 것이다. 한국 문화의 단순한 기록이나 보존이 목적이 아니라,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활용과 수출을 통해 더 많은 나라에서 한국 문화를 즐기고 이해하는 초석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인·아이랩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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