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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절없이 녹아내리는 남미의 산악빙하…“엘니뇨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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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식 부에노스아이레스 통신원

승인 : 2024. 05. 0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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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보카야주(州) 시에라네바다 국립공원 내 리투쿠바 블랑코 산악빙하가 녹아 검붉은 바위가 드러나 있다. /AFP, 연합
남미의 산악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짧게는 수백 년 동안 감춰져 있던 고산지대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지금 같은 속도로 빙하가 녹는다면 남미에서 산악빙하를 볼 수 있는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나온다. 빙하를 걷어내고 장난을 치는 주범은 온도를 높이는 엘니뇨다.

9일 AFP통신에 따르면 콜롬비아 보카야주(州) 시에라네바다 국립공원 내 리투쿠바 블랑코 산악빙하가 녹아 검붉은 바위 밑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빙하가 녹아내리기 시작한 곳은 해발 4950m 리투쿠바 블랑코 산악빙하의 하단으로 최근까지 2층 건물 높이로 꽤나 두꺼운 얼음이 덮고 있던 곳이다.

한 현지 가이드는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빙하의 두께가 대략 6m는 됐지만 지금은 1m도 채 안 된다"며 "지난 6개월간 빙하가 엄청나게 녹았다"고 말했다. 빙하 전문가들은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리투쿠바 블랑코에 빙하가 녹아 밑바닥이 보이는 곳은 없었다"며 빙하가 녹기 시작한 건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무서울 정도로 속도가 붙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악빙하의 위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20세기 초까지 콜롬비아의 산악빙하는 14곳에 달했지만 지금은 6곳만 남아 있을 뿐이다. 콜롬비아 국립기상환경연구소(IDEAM)에 따르면 콜롬비아 산악빙하의 합산 면적은 2003년 19.8㎢, 2010년 16.5㎢, 2022년 12.8㎢ 등으로 빠르게 줄고 있다.
산악빙하의 위기에 대해 엘니뇨가 불러온 재앙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빙하전문가 호세 루이스 세바요스는 "산악빙하가 유지되려면 고산지대에 눈이 내려줘야 하는데 엘니뇨 때문에 기온이 상승해 도무지 눈이 내리지 않는다"며 산악빙하에 엘니뇨가 최악의 천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엘니뇨의 심술에 시달려온 콜롬비아에선 올해 3월 일부 지역의 최고온도가 42.4도까지 치솟는 등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기록적인 무더위가 콜롬비아를 강타하면서 산악빙하는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한편 콜롬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베네수엘라를 보면 남미 산악빙하의 소멸은 이미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훔볼트 빙하는 베네수엘라에 남아 있는 마지막 산악빙하다. 베네수엘라는 빠르게 녹고 있는 훔볼트 빙하를 보호하기 위해 특수섬유로 제작한 덮개를 부분적으로 덮기로 했다. 내리쬐는 태양으로 인해 빙하가 녹는 속도를 최대한 늦춰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는 지적도 있다. 베네수엘라 로스안데스대학은 "과거 450헥타르 규모였던 훔볼트 빙하가 지금은 2헥타르로 쪼그라들었다"며 빙하로 볼 수 있는 최소 국제기준 10헥타르에 크게 미달한다고 최근 밝혔다. 남은 건 약간의 얼음덩어리일 뿐 베네수엘라의 산악빙하는 이미 소멸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유엔 세계기상기구(WMO)는 기후변화로 안데스의 산악빙하가 빠르게 소멸되고 있다며 산악빙하가 완전히 소멸될 첫 번째 국가로 베네수엘라를 지목한 바 있다.
손영식 부에노스아이레스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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