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정기종 칼럼] 21세기 초연결 시대의 전쟁과 한반도 안보외교

[정기종 칼럼] 21세기 초연결 시대의 전쟁과 한반도 안보외교

기사승인 2024. 04. 08. 18:09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2023112001002302600127751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발틱함대는 1904년 10월 14일 북해를 출항했다. 그리고 지구 둘레 4분의 3에 달하는 2만9000㎞를 220일 동안 항해한 끝에 1905년 5월 27일 대한해협에 도착했다. '이일대로(以逸待勞)'라는 병법의 말처럼 피로에 지친 러시아군대가 일본 연합함대를 상대로 선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최초의 태평양 횡단 비행기는 미국의 단엽기 미스 비돌이었다. 미스 비돌은 1931년 10월 4일 일본 아오모리현의 사비시로 해안을 출발해 41시간 동안 계속 비행해 8850㎞ 태평양을 건너 미국 시애틀 공항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현대와 비교할 수 없이 느린 이동 속도로 군사와 외교 전략도 고전적 지정학 논리에 따랐다. 그리고 100년 후인 21세기에는 과학기술의 초월적 발달로 신지정학 전략이 탄생했다. 시간과 공간의 초연결 시대가 도래한 것에 따른 군사와 외교의 개념 변화다.

2008년 미국 캔자스 대학교수 바니 와프가 발표한 「시공간 수렴의 선행역사의 발굴」을 위시로 다수 학자가 세계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시공간의 수렴시대(Time Space Convergence)로 진입했음을 설명했다. 교통과 통신이 결합된 지구적 규모의 연결망이 시공간을 급속히 축소한 것이다. 국제관계에도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원거리 국가 간의 연대가 가능해지고 변방 국가가 세계의 중심과 직접 연결되었고 지역 간의 분쟁을 연계시키고 있다. 19세기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에서 참전국들이 받지 못했던 과학기술의 수혜를 현대의 전략가들은 누리고 있다.

3월 초 러시아 관영언론은 2월 19일 있었던 게르하르츠 독일 공군참모총장과 작전훈련참모 그레페 준장 간의 통화 녹취 내용을 보도했다. 대화는 독일제 타우러스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제공 전망에 관한 것으로 우크라이나는 전쟁의 흐름을 바꾸기 위한 새로운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전은 2014년 러시아가 합병한 크림반도 수복 작전으로 관측된다. 이것은 현재 지원병 형태로 참전 중인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파병도 하나의 선택이라고 발언한 이후 나온 것이다. 현재로서 독일이 실제로 타우러스 미사일을 제공할 가능성은 적지만 우크라이나는 트럭과 드론을 사용해 2022년 10월과 2023년 7월 두 차례에 걸쳐 크림반도 케르치 대교를 공격했다. 그러나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길이 17㎞의 장거리 교량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서는 타우러스 50기 정도가 필요하다고 평가된다. 형제의 칼이 깊이 박힌다는 말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슬라브 민족 간의 양보 없는 대결로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8년간 그리고 한국전쟁이 3년간 계속되어 소모전이 된 것과 같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배후에 지원세력이 있는 전쟁은 결국 모두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결과가 되었다. 우크라이나로서는 나토의 지원을 받기 위해 확전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동에서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를 지원해 파병 중이다. 이스라엘은 확전까지 염두에 두면서 가자 전쟁의 외연을 확대해 시리아와 레바논을 폭격했고 예멘 내전은 사우디와 이란 간의 대리전과도 같이 전개되고 있다. 지부티와 예멘 간의 밥엘 만뎁(비통의 문) 해협에서 미국과 나토 군함이 예멘군과 조우하지 않고 폭 25㎞ 정도에 8개의 섬이 위치한 해협을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2017년 지부티 항에 개설한 중국군 해군기지에는 대대급 이상 병력이 주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법과 유엔의 역할이 미력한 상황에서 국제정세는 외교력보다 군사력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21세기 들어 가속화한 북극해의 해빙으로 북극 항로가 개통되면서 러시아의 안보 감각은 더 예민해졌다. 이 같은 시기 러시아로서는 동북아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미국과 나토의 군사력이 분산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북한과 중국이 중요한 레버리지가 되는 것으로 대만해협과 한반도에서의 분쟁 가능성이다. 북한이 반사이익을 얻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의 안보전위대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와중에 러시아 공군의 전략핵폭격기 TU95의 동해항로 비행은 정례화하고 있다. 2023년 7월에는 러시아군과 중국군과의 연합군사연습에 양국군 항공기와 대잠구축함과 초계함이 참가했다. 양국 간의 동해군사연습은 7월 나토 정상회의에 한국과 일본이 참가하고 한국과 미국이 서울에서 핵협의그룹(NCG) 회의를 시작한 시기에 맞춘 것이다.

한국의 국력과 지정학적 중요성이 높아지는 중에 전개되는 이 같은 정세변화는 다음 몇 가지 점에 주목하면서 대비할 필요가 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단계적인 위험으로 빠져들어 가기 때문이다. 첫째, 대외정책은 철저히 국가의 안전과 이익에 입각해야 한다. 군사력의 강화가 기본이 되어야 하고 방산제품의 수출은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원칙과 명분에서 합리적이고 정당해야 한다. 유엔헌장과 국제법을 준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 미·중, 미·러 간의 충돌뿐 아니라 데탕트에도 대비해야 한다. 전후 미·소 간 냉전기에도 데탕트 시기가 있었고 진영 간에 위치한 경계국가는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운신의 여유를 갖고 있어야 한다. 셋째, 대외정책이 북한의 군사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결과가 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외교력의 행사에는 구심력과 원심력 사이에 속도와 거리의 조절이 있어야 한다.

정부가 안보 관리를 위한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평화외교를 작동해야 하는 것은 현실주의적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에게 분명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 방향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설득력은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국론의 분열은 내우외환의 위기를 초래한다. 한국은 능동적인 외교의 구심점을 잃지 않고 전략적 사고가 요구되는 시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