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이병욱의 단상] 악마의 변호사(Devil‘s Advocate)가 필요하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2.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221010010603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2. 21. 18:03

2024022101010013321
이병욱 경영학박사·칼럼니스트
서구사회는 가톨릭교회의 영향으로 악마의 변호사(Devil's Advocate) 제도가 잘 알려져 있고, 널리 활용되고 있다. 악마의 변호사는 부정적인 어감과 달리 올바른 지도자를 선발하거나 공동체가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래 악마의 변호사 또는 악마의 대변인은 다수의 의견에 의도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역할을 한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시복시성(諡福諡聖)을 청원하는 이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악마의 변호사에게 맡긴다. 전문가들의 논리적인 토론장에서는 대다수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제기함으로써 토론을 활성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학계에서도 논문을 발표하거나 심사할 때 찬반 양측의 의견을 듣고 발표자의 주장이나 논거에 대해 다양한 시각에서 검증한다. 특히 발표자와 의견을 달리하는 패널과 반드시 함께 하도록 하는 미국식 악마의 변호사 제도는 학문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동체에서 만장일치는 올바른 의사결정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유대인들은 만장일치가 거의 불가능하며, 의견이란 대립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하여 논의를 한다.
심지어 만장일치로 이루어진 의사결정은 무효라는 인식까지 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만장일치를 별 문제 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에서는 악마의 변호사제도를 활성화하여 집단적 의사결정의 오류를 줄여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악마의 변호사제도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널리 활용되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 공동체가 권위주의적이고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탓이기도하다. 우리나라는 과거 '압축 성장' 과정에서 절차와 과정보다는 결과와 효율을 중시해온 행태도 한몫하는 것 같다. 왜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일을 어렵게 만드느냐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정치권과 일부 공동체에서는 만장일치의 의사결정을 자랑하며 지도자 리더십의 징표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인간세계는 다양한 시각과 의견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유민주 사회에서 100% 찬성이라는 의사결정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것이고, 잘못된 의사결정일 가능성이 크다. 세상에 모두가 동의할만한 완벽한 제안이나 결정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악마의 변호사의 좋은 취지를 잘 알기에 스스로 악마의 변호사 역할을 자처하는 진솔한 분들이 있지만, 그들은 소수이고 오해를 사거나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 직장과 명예를 잃기도 한다.

우리사회 지도층의 자질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한 공직자가 들려주는 질문형식의 농담 속에 우리사회에서 올바른 의사결정이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강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이기지 못하는 것들이 있단다. 세월 앞에 장사 없고 매 앞에 장사가 없다. 그리고 아부 앞에도 장사가 없다는 것이다.

사업가의 경우는 높은 세율과 과도한 규제 앞에는 그저 침묵하거나 굽신 거리게 된다고 한다. 지도자는 아부나 침묵을 경계하고 악마의 변호사 역할을 하는 분들의 충언을 경청해야 하는데, 그럴 여유와 기회가 없는 것 같다. 우리사회는 바르고 정직한 사람보다는 아부하고 잔머리 굴리는 사람들이 성공하기 유리한 사회에 속한다.

우리 사회와 모든 공동체가 더욱 발전하고 보다 나은 단계로 거듭나려면, 품격 있는 지도자와 우수 인재들이 제대로 발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악마의 변호사제도와 같은 좋은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병욱 경영학박사·칼럼니스트

※본란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