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에는 입하보다 산과 들이 싱그러운 신록으로 더 가득하고 파란 하늘과 함께 날씨가 더 밝고 맑아져 눈이 부실 정도로 산뜻한 풍광을 연출한다. 수목이 많아 싱그러운 녹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산은 특히 더 산뜻하게 보인다. 이 무렵부터 장마가 시작되기 전인 대략 하지 초후까지 이러한 풍광과 날씨가 지속되면서 연중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계절이 펼쳐진다. 이 무렵은 안정된 날씨 속에서 지상은 연녹색으로 그리고 하늘은 코발트색으로 동시에 푸르러지는 싱그러운 때다. 입하부터 이어져온 소만 무렵의 이런 온화한 기후와 산뜻한 풍경이 오월을 ‘계절의 여왕’으로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소만 어간에 보리와 밀의 이삭이 다 자라 가을의 벼처럼 누런빛을 띠어간다. 그래서 소만 끝 무렵에 이르면 보리가 거의 다 익어서 누렇게 되기에 이 시기를 ‘맥추(麥秋)’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보리의 가을 즉 보리의 추수철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소만은 아직 보리를 추수하기에는 좀 이른 때이고 다음 절기인 망종 때가 보리 수확의 최적기라 할 수 있다. 옛날의 이 무렵은 ‘보릿고개’의 마지막 고비여서 굶주림을 달래기 위해 상당히 여물었지만 아직 다 익지는 않은 보리나 밀을 구워 먹기도 했다. 그런데 덜 여문 보리를 그슬리면 그 맛이 부드럽고 고소하기가 그만이다. 그 맛이 좋아서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장난삼아 다 익지 않은 보리나 밀의 이삭을 불에 그슬린 다음 손으로 비벼 빈 껍질들은 불어내고 남은 연한 보리알이나 밀알을 먹는 소위 보리 서리나 밀 서리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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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심한 가뭄이 들기도 하는데 이때를 대비해 농촌에서는 미리부터 논에 충분한 물을 가두어 모내기를 준비한다. 이런 무논에 개구리들이 모여들어 짝을 찾느라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하는데 밤에는 더욱더 요란하다. 옛날과는 다르게 별도의 묘판을 만들어 볍씨의 싹을 틔우고 어린모를 키우면서부터 모내기가 빨라져 보리를 심지 않은 논에는 소만 무렵부터 북쪽에서 먼저 모내기가 시작되어 차차 남쪽으로 내려간다. 이처럼 농촌은 모내기, 보리 베기, 밭농사를 위한 파종과 김매기 등으로 무척 바빠지는 본격적인 농번기가 소만 어간부터 시작된다. 이와 더불어 이제 시절은 명실상부한 여름이 되어 간다.
지난해 6월 5일 망종으로 시작된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는 오늘자 소만을 끝으로 24절기를 모두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