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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입춘(立春), 봄의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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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1. 02. 03. 00:00

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첫째 절기로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立春·start of spring)이 시작되는 날이다. 24절기는 입춘으로 봄과 한 해를 시작한다. 이때 지구에서 본 태양의 운행로인 황도(黃道) 상에서 태양의 위치는 동지와 춘분의 중간 지점이며 이때부터 춘분 쪽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24절기 달력인 절기력(節氣曆)의 관점에서 보면 봄의 길목이다. 계절 변화의 근본 원인은 황도 상에서 태양의 움직임인데 그 움직임이 봄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절기력에서 입춘은 봄의 문턱으로 봄기운이 일어나는 때이며 입춘일은 새봄의 첫 날이며 동시에 새해 첫 달의 첫 날 즉 연초일(年初日)이 된다.

실제의 기후와는 상관이 없이 지루한 겨울을 나며 봄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에서는 이때 이미 봄을 맞고 있다. 봄은 감각으로보다는 기다리는 마음으로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춘’이라는 말에, 그리고 조금은 성급하게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에 반가움이 앞선다. 감각으로는 아직 추위가 남아 있는 겨울이지만 마음으로는 화사한 매화와 함께 봄날을 맞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무렵부터 추위도 그냥 추위가 아니라 봄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라고 부른다.

입춘은 문자 그대로는 봄이 시작된다는 뜻이지만 실제로 봄을 느끼기에는 아직 겨울 기운이 꽤 많이 남아 있는 때다. 동짓날로부터 세 개의 절기 즉 약 45일이 지난 시점이고 낮에는 햇볕도 상당히 따뜻하기는 하지만 그동안 축적된 한기와 아직은 한파를 몰아오는 시베리아 기단의 위세가 가시지 않아 ‘입춘한파’ ‘입춘 거꾸로 붙였나’ ‘입춘 추위 김장독 깬다’ 또는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말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때 흔히 매서운 추위가 몰려와 다가오는 봄을 시샘하기도 한다. 이 무렵에는 동장군(冬將軍)의 심술이 꽤나 고약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입춘이 되었다고 해서 따뜻한 봄이 된 것으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입춘 절기 에세이 1
봄의 길목 입춘에 목련 꽃눈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 이효성 주필
하지만 이때부터 바람결에 변화가 일어나 매서운 북서계절풍 대신 때때로 부드러운 동풍 즉 봄바람이 약하게나마 불어오기 시작하고 햇볕이 상당히 따스해져 해동이 시작된다. 입춘 한파가 아무리 매섭게 눈을 부라린들 막무가내로 밀려오는 봄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입춘 어간에 한반도에서는 최남단인 제주도에서부터 자연에 슬슬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여 파죽지세로 북상하기 시작한다. 이제 동장군의 심술로도 어쩔 수 없는 봄의 도도한 진군이 시작된 것이다.
이 무렵부터 산골짜기에는 여러해살이풀인 앉은부채가 언 땅을 뚫고 올라와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고 산과 들에는 냉이, 꽃다지, 쑥 등의 이른 봄나물들이 돋아나 있다. 이 작은 것들이 추위를 뚫고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용맹한 봄의 전령사들이다. 이때쯤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는 한겨울부터 수줍은 듯 나뭇잎 속에 숨어서 피고 지는 동백의 새빨간 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춘란(春蘭)으로도 불리는 보춘화(報春化)와 수선화도 그 뿌리에서 꽃대가 나와 꽃이 핀다. 그리고 본래 따뜻한 남녘에서 잘 자라지만 꽃은 추위 속에서 피워내는 매실나무에도 입춘 추위 속에서 단아한 매화가 벙글기 시작한다.

예부터 입춘이 드는 날 입춘이 드는 시간에 집의 대문이나 기둥이나 대들보에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었음을 자축하며 한 해의 행운과 건강과 복을 비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봄이 되니 크게 길하고 따뜻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으리라)과 같은 글귀를 쓴 입춘방(立春榜)을 붙이는 세시풍속이 있다. 입춘에는 입춘 절식이라 하여 움파, 부추, 마늘, 달래, 무릇, 유채, 멧갓, 당귀 싹, 미나리 싹 등의 시거나 매운 푸성귀 가운데 오방색(五方色·오행설에 따라 동쪽은 파랑, 서쪽은 하양, 남쪽은 빨강, 북쪽은 검정, 가운데는 노랑의 다섯 가지 색깔)이 나는 다섯 가지로 ‘입춘오신채(立春五辛菜)’라는 자극적인 생채요리를 만들어 먹음으로써 새봄의 미각을 돋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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