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지방에서 서리는 대체로 시월 중순 어간부터 이듬해 4월 중순까지 약 6개월 정도 내린다. 그런데 서리가 내린다는 것은 기온이 빙점 이하로 되어 식물 세포 안에 있는 물이 얼어 세포가 파괴되고 식물이 죽게 됨을 뜻한다. 따라서 서리는 농작물 특히 여름작물들에게는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농사에는 매우 경계하고 피해야 할 대상이다. 벼를 비롯한 농작물은 어떤 경우에도 서리가 내리기 전에는 수확을 마치도록 해야 한다.
상강 어간은 마늘을 심고 양파 모종을 이식하는 적기이기도 하다. 또 마의 덩이뿌리를 이 무렵부터 대설까지 수확한다. 또 아직껏 하지 못한 경우, 조와 수수를 수확하고, 고구마를 캐고, 콩을 타작하고, 호박, 밤, 감을 따고, 서리 맞기 전에 고추와 깻잎도 따야 하는 등으로 무척 바쁜 때다. 과거 이모작 시절에는 이 시기에 벼를 베어 타작하고, 벼를 베어낸 논에는 다시 가을보리를 파종한다. 그래서 ‘한로 상강에 겉보리 간다’, ‘보리는 입동 전에 묻어라’, ‘입동 전 가위보리다’라는 속담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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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강 무렵은 한반도에서 최고의 단풍철이다. 한로 전후로 북녘의 산정에서부터 시작한 나뭇잎들의 아름다운 오색단장이 이 무렵에는 산 아래까지 내려오고 점점 남하하여 상강 절기 중에 남부지방에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반도는 말 그대로 천자만홍(千紫萬紅)의 울긋불긋한 단풍 천지가 된다. ‘농가월령가’ 는 이 무렵의 모습을 ‘만산풍엽은 연지로 물들이고’라고 묘사하고 있다. 상강 절기의 단풍의 화려함을 두고 만당(晩唐)의 시인 두목(杜牧)은 ‘서리 맞은 나뭇잎이 이월(양력 3월)의 꽃보다 붉구나(霜葉紅於二月花)’라고 읊었다.
우리 속담의 ‘서리를 기다리는 늦가을 초목’이라는 말처럼, 이때부터 겨울 맞을 준비를 위해 나무들은 서리 맞아 시든 잎사귀들을 땅에 떨구고, 동면(冬眠)하는 벌레들은 모두 땅 속으로 숨는다. 이 무렵에 대부분의 초목의 잎은 변색하여 화려함을 뽐내기도 하지만 이내 시들어져 버린다. 그래서 당장 보기에는 좋아도 얼마 가지 않아 흉하게 됨을 이르는 ‘구시월의 세단풍(細丹楓)’이라는 속담이 생겼으리라.
나뭇잎은 이제 조락하여 낙엽으로 땅에 쌓이거나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면서 사람들을 우수에 젖게 한다. 바람에 우수수 지거나 이리저리 날리다 사라지는 낙엽에서 사람들은 고독, 이별, 상실, 소멸, 죽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낙엽 또는 고엽이야말로 가장 가을다운 물상이다. 그래서 이 무렵에는 낙엽들이 나뒹구는 모습을 보며 이별과 상실을 노래하는 냇 킹 콜(Nat King Cole)의 ‘고엽(枯葉)’,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라는 가사가 있는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 등의 노래가 심금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