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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홍제동 개미마을 추위 녹인 ‘연탄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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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다현 기자

승인 : 2024. 11. 22. 16:03

109가구 사는 개미마을 도시가스 없어 연탄 겨울 버텨
자원봉사자들, 지게로 연탄 나르며 주민들에 온기 전해
연탄은행 허기복 대표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진행된 연탄 봉사에서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왼쪽)가 자원봉사자의 지게에 연탄을 실어 주고 있다. /강다현기자
"연탄 한 장에 녹아 있는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고 소외계층의 겨울을 책임지고 싶어요."

지난 21일 오후 2시 30분께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인왕산 자락에 109가구가 옹기종이 모여 사는 이곳에 젊은 청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금융권에 종사하는 직장인들로, 약 170명이 이날 개미마을 20가구에 연탄·난방유 배달 봉사를 하기 위해 모였다.

연탄과 난방유를 전달할 집을 확인한 자원봉사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곧이어 한 사람도 지나가기 힘든 좁은 계단에 형광색 조끼를 입은 채 줄지어 섰다.

자원봉사자들은 사뭇 긴장한 표정으로 손에 든 연탄을 옆사람에게 전달했고, 순식간에 연탄 릴레이가 시작됐다. 무게 3.6kg의 연탄은 아기를 다루는 듯한 청년들의 손길을 따라 개미마을 구석구석으로 옮겨졌다. 또 다른 봉사자들은 이른바 '연탄 지게'를 진 채 미로 같은 개미마을 골목길을 굽이굽이 걸으며 연탄을 배달했다. 한 가구에 배달되는 연탄은 200장으로, 몇 번이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봉사자들의 얼굴에는 금새 땀방울이 맺혔다.
연탄 8장을 짊어 메고 계단을 오르다 잠시 숨을 고르던 박종원씨(36)는 "2년째 연탄 봉사에 참여하고 있는데 온몸이 쑤실 만큼 힘들지만, 오늘 나르는 연탄으로 어르신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없던 힘도 생긴다"고 말했다. 그레이스리씨(38·여)도 "항상 회사에 있다가 이렇게 어려운 이웃에 도움을 주는 보람이 마치 중독처럼 느껴져 매년 나올 계획"이라고 전했다.

집 앞에 쌓인 연탄을 바라보던 주민 김종만씨(82)는 "연탄 6개가 들어가는 연탄보일러를 사용해 오전·오후 할 거 없이 연탄을 많이 쓴다"며 "연탄 가격도 비싸져 이렇게 봉사해 주는 사람 없으면 어떻게 살지 눈앞이 캄캄한데 집까지 와서 (연탄을) 채워주니 올 겨울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홍제동 개미마을 연탄 자원봉사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지게에 연탄을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강다현기자
주민 김길자씨(87·여)도 봉사자들을 향해 연신 "고맙다"고 말하며, 미리 유리병에 준비한 따뜻한 차를 내어오기도 했다. 김씨는 "매년 이렇게 봉사자들이 와서 연탄을 배달해 주는데 간식을 내어주고 싶어도 생활비가 부족하니 전날 주려고 차를 끓였다"며 "이 마을 대부분 오래된 집이라 웃풍이 심해 연탄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봉사자들은 연탄 대신 보일러를 사용하는 가구에도 난방유를 배달했다. 김현수씨(31)는 "젊은 성인도 무거워서 (기름을) 넣기 힘든데 어르신들이 어떻게 옮길지 상상도 안된다. 봉사를 통해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끼고 앞으로도 봉사에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턱밑까지 흘린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이날 봉사자들은 개미마을 20가구에 연탄 4000장과 난방유 160리터를 전달했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는 봉사자들과 함께 연탄을 나르며 "연탄을 떼는 가구는 대부분 어르신들이라, 추위를 잘 타 매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연탄 배달을 매일 해나가고 있다"며 "이들이 한 달에 사용하는 연탄은 대략 400장이라 겨울을 보내려면 약 1050장의 연탄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연탄 사용 가구 수는 7만4000여 곳으로, 2006년 27만여 가구와 비교해 매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가정에 사용되는 무연탄 소비량도 2016년 21만 톤에서 2022년 3만 톤 규모로 해마다 하향세를 나타내고 있다.

허 대표는 "지난 15일까지 서울에서 후원받은 연탄은 25만장 밖에 되지 않는다. 2021년에는 500만장이었던 후원 연탄이 해가 지날수록 점점 줄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취약계층은 우리 사회가 안고 가야 할 부분이라, 기부·봉사 문화가 활성화돼 어르신들이 따스한 겨울을 보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홍제동 연탄 자원봉사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연탄은행 관계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길게 줄을 지어 한 장씩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강다현 기자
강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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