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칼럼] 그림책 세상처럼 모두가 평등하고 아름답게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2.asiatoday.co.kr/kn/view.php?key=20231010010004054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3. 10. 11. 06:00

강경희 갤러리지지향 대표
KakaoTalk_20231010_153905176
강경희 갤러리지지향 대표
환경 보호, 사회적 약자, 동물 복지에 꾸준히 목소리를 낸 작가 로저 올모스(Roger Olmos)의 '눈을 감아야 보이는 세상'은 시각장애인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주인공 루치아는 시각장애인으로 여느 아이들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에 갈 준비를 한다. 양치질을 하고, 아침을 먹고, 겉옷을 걸치고 흰 지팡이를 들고 집을 나선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 기다리던 버스가 오면 자리에 앉는다. 버스가 달리기 시작하면 루치아는 살포시 창에 머리를 기대고 자신이 그리는 세상을 열어본다. 루치아의 세상은 코나 귀나 손으로 느끼고 인식되는 세상이다. 쓸쓸한 냄새를 풍기는 비둘기 할아버지, 걸어 다니는 굴뚝처럼 매캐한 아저씨, 호루라기 모양의 귀뚜라미, 고양이 울음소리는 싸이렌 소리로 형상화된다. 루치아가 그리는 세상은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신기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작가 로저 올모스는 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어린아이 루치아를 통해 '본다'는 것의 본질과 의미에 관해 되묻는다. 오로지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제한된 사고와 관념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저자는 시각장애인과 만나 생생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또 자신의 눈을 가리고 진흙으로 자화상을 만들어 보는 등 직접 체험과 오랜 자료 조사를 통해 장애인의 관점을 반영한 배리어 프리(물리적이고 제도적인 장벽을 허무는 운동이나 인식) 그림책을 완성했다. 이 책은 사람들의 생김이 저마다 다르듯, 장애 역시 사람을 서로 같지 않게 하는 여러 특징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누구나 똑같은 권리를 갖고 평등하게 세상을 살아야 함을 역설한다.

최근 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그림책 중에서도 보석 같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발달장애인 이주민 씨는 이미 첫 그림책을 낸 후 창의성과 실력을 갖춘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또 다른 그림책을 준비하고 있다. 또 다른 장애 예술가인 김민정 씨도 '우리 집 올탱이'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주위에 따뜻한 사랑이 있으면 장애라는 틀을 벗고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 뿐만 아니라 아기 거북이가 상어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성장과 모험 이야기를 담은 '엄마는 어디 있을까?', 주인공 사슴벌레가 사는 숲을 찾아가면서 용감함과 자신감을 찾는 '숲으로 간 왕돌이' 등도 모두 장애 예술가들이 준비 중인 그림책이다. 모두 전문 그림책 작가들이 전수하는 내용을 충실히 소화함으로써 그림책 서사와 구성이나 테크닉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도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장애·비장애 예술인이 차별 없이 대중과 소통하고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각과 실력이 있는 신진 작가의 발굴과 성장은 정교한 교육프로그램과 전문가들의 애정과 각고의 노력을 통해 이뤄진다. K-그림책 콘텐츠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응원이 필요한 이유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예술가와 감상자가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연결의 정신', 개인의 상상력과 창조적 에너지가 함께 연대하고 협력함으로써 더 좋은 예술 콘텐츠를 생산하는 '공명의 가치', 우수한 역량을 갖춘 K-그림책이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 사랑받는 문화 전령사임을 자부한다는 '확산의 영향'이 구현되기를 바란다. 좋은 예술은 장벽을 세우지 않으며, 난관이 있어도 멈추지 않고 나가는 것이다. 그림책 세상처럼 모두가 평등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찬 내일을 소망해 본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