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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칼럼] 시 주석의 말과 중국의 행동

[이효성 칼럼] 시 주석의 말과 중국의 행동

기사승인 2023. 06. 2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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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넓은 지구는 중국과 미국이 각자 발전하고 함께 번영하기에 충분하다"며 "중·미 양국이 올바르게 공존할 수 있느냐에 인류의 미래와 운명이 걸려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미국의 이익을 존중하며,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찬가지로 미국도 중국을 존중해야 하며 중국의 정당한 권익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며 "어느 쪽도 자신의 뜻대로 상대를 만들어가려 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상대방의 정당한 발전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시 주석의 이런 발언들은 겉으로는 주권국가의 당연한 말로 들린다. 그러나 그 말을 잘 살펴보면 언행 불일치와 함께 그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특히 정치인들은 흔히 미사여구로 자신의 말을 꾸며서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그럼에도 언행이 불일치하거나 진짜 속마음을 아주 감추지는 못한다. 그래서 언중유골이라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시 주석의 말은 다음과 같은 세 주장으로 요약된다. ①미·중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해도 될 만큼 지구는 충분히 넓다. ②인류의 미래와 운명은 미·중 두 강대국의 손에 달려 있다. ③중국은 미국의 권익을 해치지 않을 테니 미국도 중국의 권익을 해치지 말라. 이제 세 주장을 하나씩 그 의미를 천착한 후에 마지막으로 전체 주장들을 통합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첫 번째 주장은 중국이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 됐으니 이제 미·중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여 중국의 패권도 인정하라는 뜻이다. 시 주석의 이런 말은 10년 전인 2013년 6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그가 좀 더 적나라하게 한 발언과 유사하기에 더욱 그렇게 해석된다. 그때 시 주석은 "'광활한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대국을 수용할 만큼 넓다"며 "대립과 갈등의 배제, 상호 존중, '윈윈'하는 상호협력을 바탕으로 '신형 대국관계'를 만들어 가자"고 제안했었다. 10년 전과 전체 주장은 비슷하다. 다만 과거에는 패권의 대상이 '광활한 태평양'이었으나 지금은 아예 '넓은 지구' 전체로 확대되었을 뿐이다.

두 번째 주장은 이제 세계는 미국의 일극 체제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라는 이극 체제가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국에게 다른 강국들은 말할 것도 없고 EU나 러시아 같은 존재도 아예 안중에 없다. 오로지 미국과 중국만이 세계 패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 주장은 중국의 패권 행사를 방해하면 인류의 미래와 운명도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이기도 한다. 이 두 번째 명제와 첫 번째 명제를 결합하면, 인류의 미래와 운명은 미국과 중국이 지구를 양분하여 패권을 행사함으로써 보장된다는 주장이 된다.

세 번째 주장은 미국과 중국은 넓은 지구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도, 바꾸어 말하면, 패권을 행사해도 서로 상관하지 말자는 뜻이다. 미국의 간섭이나 방해 없이 중국 나름의 패권 행사를 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고 미국과 갈등으로 패권 행사가 막힌 것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다. 이 세 번째 주장을 앞의 두 주장들과 결합하면, 이 넓은 지구에서 미국과 중국은 서로 간섭하지 않고 마음대로 패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 미·중 간의 갈등이나 그에 따른 불안이 없이 인류의 미래와 운명이 보장된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이런 중국의 주장들을 종합하면, 중국은 미국에 필적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했고 따라서 미국처럼 중국도 자유롭게 패권을 행사하고 싶으니 방해하지 말라는 과대망상적 요구이며,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와 운명이 어찌 될지 모른다는 위협성 발언이기도 하다. 이는 지금까지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언명과 배치되며, 티베트와 신장의 강제 합병, 남중국해의 영해화, 약소국들에 대한 전랑 외교, 전랑 외교에 굴복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경제 보복 등의 행동과도 배치된다. 공자의 말대로, "교묘한 말과 꾸민 얼굴은 어짐이 부족하다(巧言令色鮮矣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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