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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칼럼] 공갈법(恐喝法)이 된 중대재해처벌법

[최준선 칼럼] 공갈법(恐喝法)이 된 중대재해처벌법

기사승인 2023. 02. 0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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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 사진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1월 27일 시행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정책이슈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12월 말 기준 이 법률 위반으로 노동청 기소의견 송치 사건이 34건, 검찰 기소가 11건, 수사 기간은 평균 237일(약 8개월)로 집계됐지만, 실제로 처벌된 사건은 한 건도 없다. 공갈법(恐喝法)이 된 것이다.


이 법률은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도록 돼 있고, 경영책임자는 형식적으로는 '대표이사나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돼 있어서 일견 명확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대표이사가 복수인 기업, 사업 부문별 각자 대표가 있는 기업, 최고안전보건책임자(CSO)를 둔 기업 등 다양해서 과연 누가 책임자인지 가리기 쉽지 않다. 압수·수색과 임의의 자료제출로 조직도, 안전보건 관련 규정, 도급계약서, 위임전결규정 등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분석하고서도 사고의 직접 책임자를 식별해 내기는 매우 어렵다. 법률규정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이 법률 위반으로 입건 및 기소된 경영책임자는 결국 모두 대표이사였고, CSO를 별도로 둔 기업에서조차 CSO가 기소된 예는 단 한 건도 없다.

모든 중대재해의 형사책임을 곧바로 경영책임자에게 직접 연결시키려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구조 자체가 형법상 자기책임주의원칙 위반이다. 결국 한국에서는 기업하는 사람에게 무제한·무과실 책임을 지운다. 기업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형사처벌은 법률 위반의 고의를 증명해야 하고, 고의의 법률 위반과 사고 간에 인과관계가 증명되어야 가능한데, 이것을 증명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본래 고의라는 것이 내심의 의사인데, 사람 속마음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방법은 아직까지는 발명되지 못했으며, 아마도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사고 발생 당시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CEO가 고의를 가지고 근로자를 사망케 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그냥 CEO니까 처벌받아야 한다고 우기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을까? 이처럼 고의를 증명하지 않고서도 처벌하는 것은 무슨 논리든 갖다 붙여도 결국은 과실범과 유사할 뿐인데, 처벌은 1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하게 돼 있다. 살인죄 외에는 이보다 강력한 처벌법규가 우리 형사법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실범에 대해 이처럼 엄한 처벌을 하겠다니 이것 또한 헌법상 과잉금지원칙 위반이다. 처벌을 받는다고 하여 뉘우치고 반성할 CEO가 과연 있을지 모르겠다. 그냥 재수 없이 걸렸거나 돈이 없어 대형 로펌의 변호사를 동원하지 못했다는 자괴감밖에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수사 범위는 매우 방대하여 감독관이 20~40명 투입되고 피의자와 참고인 등 20~30명씩 수사해도 해결되는 사건은 거의 없는데, 사건은 계속 누적되고 있다. 또 노동청과 경찰의 경쟁·중복 수사가 이루어져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이쪽저쪽 불려 다니면서 똑같은 얘기를 수차례 반복해야 하는 기업인만 죽을 지경이다.

내년부터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되는데, 과거 통계를 보면 사망사고의 90% 이상이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법적 대응능력마저 취약한 중소기업이 덫에 걸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난 5년간 한국 사법제도가 왜곡돼 수사 지연과 재판 지연이 심각한 실정이다. 수사관, 감독관, 피의자 할 것 없이 의지할 것은 법률도 아닌 로펌이나 정부 유관기관이 만들어낸 중구난방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뿐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사태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고, 입법 과정에서도 수많은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무시됐다. 근로자의 감성에 호소해 표를 모아 재선을 노리는 일부 국회의원의 얄팍한 수작에 대한민국이 멍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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