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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아리랑] <17> 만주 유랑민의 이정표 ‘대지의 항구’

[대중가요의 아리랑] <17> 만주 유랑민의 이정표 ‘대지의 항구’

기사승인 2022. 11. 2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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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말을 매는 나그네야 해가 졌느냐/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달빛에 길을 물어/ 꿈에 어리는 꿈에 어리는 항구 찾아 가거라// 흐르는 주마등 동서라 남북/ 피리 부는 나그네야 봄이 왔느냐/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꽃 잡고 길을 물어/ 물에 비치는 물에 비치는 항구 찾아 가거라// 구름도 낯설은 영을 넘어서/ 정처 없는 단봇짐에 꽃비가 온다/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바람을 앞세우고/ 유자꽃 피는 유자꽃 피는 항구 찾아 가거라'

만주사변(1931)과 중일전쟁(1937)에 이어 태평양전쟁(1941)이 발발한 1940년대는 일제의 수탈과 유린이 극에 달하며 한민족의 설움과 고통도 그만큼 크고 깊었다. 이때 의지할 곳 없이 먼 이국땅을 표류하는 사람들의 심신을 어루만져준 노래가 '대지의 항구'였다. '대지의 항구'는 그래서 리듬이 경쾌하다. 노랫말도 희망적이다.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해야 했던 시절의 애창곡이다.

남해림의 노래시와 이재호의 선율이 조화를 이룬 백년설의 노래 '대지의 항구'는 다분히 서정적이다. 더구나 '버들잎' '이정표' '나그네' '단봇짐' 등의 낱말들이 한국적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 낯익은 풍경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친일가요'라는 불명예도 안고 있었다. 조선인들을 만주로 이주시켜 황무지를 개척해 군량미를 확보하려는 일제의 이민정책을 미화한 영화 '복지만리(福地萬里)'의 삽입가였기 때문이다.

영화 '복지만리'의 내용은 만주의 조선인 이주민간 갈등과 화해를 다뤘지만 만주개척 대열에 동참을 유도한 것도 사실이다. 민족적 각성에 주목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일제의 식민정책에 편승했다는 비판이 강하다. 백년설이 다 같이 부른 두 개의 주제가에 대한 의견도 온도 차이가 있다. '복지만리'는 '새 세상' '새 천지' 같은 표현으로 만주 이민을 장려해 친일가요라는 혹평을 받았다.

'대지의 항구'도 친일시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나그네의 목적지 또는 이상향으로 제시한 '항구'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고구려의 옛 터전이었던 만주는 끝없는 벌판이다. 광활한 대륙에서 동서남북을 구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정처 없는 나그네에게 '항구를 찾아가라'고 한다. 그것도 '유자꽃 피는 항구'다. 최소한 일제의 대륙 진출을 묵시(默視)한 노래는 아닐까.

그래서 대중가요평론가 유차영은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이 판을 치던 시절, 핍박받는 백성의 감성을 얽어놓은 시대적 사생아"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만주 이민을 독려한 일제의 흉계가 스며있건 말건 고국과 고향을 떠나 황량한 만주벌판을 방랑하던 조선 나그네들은 멀리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대지의 항구'를 많이 불렀다.

만주는 고조선과 고구려의 옛 강토라는 친근감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나라 잃은 실향민들의 이국과 타향에서의 삶이란 서러움과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더러는 꿈과 희망을 안고 만주로 왔지만 일제의 약탈과 만주인의 횡포가 기승을 부리는 황량한 벌판일 뿐이었다. 그래서 일제의 숨은 계략을 분석하는 이성적 접근보다는 노래가 지닌 정서와 정감에 먼저 공감하며 노래 자체를 음유하고 싶었을 것이다.

해방 후 친일시비와 남북한의 평가도 엇갈렸지만 '대지의 항구'는 전주(前奏)의 인상적인 선율과 경쾌한 리듬으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다. 라디오 프로그램 시그널 뮤직으로도 자주 사용되었다. 황폐한 시절, 가수들은 물론 작사·작곡가들도 친일 행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당시의 조선인들은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정신적으로나마 '대지의 항구'를 꿈꿔야 했던 식민지 나그네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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