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 ‘반지하(Banjiha)’ 유감

[칼럼] ‘반지하(Banjiha)’ 유감

기사승인 2022. 08. 15. 17:42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이경욱 대기자
이경욱
2019년 개봉된 '기생충' 영화를 보고 낯이 몹시 뜨거웠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다. 영화에 문외한이라 작품성 등은 평가할 입장이 아님을 전제로, 반지하 방에서 가족이 몰려 사는 장면을 접하고 솔직히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기생충 영화는 제 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을 휩쓸었다. 수십 개의 영화상을 거머쥐면서 한국 영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지하 방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감추고 싶은 씁쓸한 자화상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지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반지하는 도대체 누가 허가해 준 '괴물'일까. 다른 나라에도 이런 왜곡된 건물이 있기는 한 걸까."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올해 8월 서울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반지하 방에 거주하던 3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숨진 이들은 비좁은 공간을 갑작스레 비집고 들어오는 황톳물에 무방비 상태였을 것이다.

외국 언론은 집중호우 피해를 전하면서 반지하를 'semi-basement(반 지하층)' 또는 'underground apartment(지하 아파트)' 등으로 표현했다. 아예 발음을 로마자 알파벳으로 옮긴 'banjiha'라고 적기도 했다. 영국 BBC는 반지하 방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현실은 영화 기생충보다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서울의 반지하 거주민 중 빈곤층이 많다며 반지하 주거 형태가 기생충의 배경으로 활용됐다고도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 등은 현장을 방문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서울시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반지하 참사를 지켜보면서 슬픔을 넘어 뭔가 확 울화가 치미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세계 경제 10대 대국, K팝, 한류, 반도체 강국 등 우리를 따라 다니는 수식어를 무색게 하는 반지하 방 참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최소한의 주거 공간을 보장하고 폭우 등 자연재해나 화재 등 인재에 생명을 보호할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하는 매우 무거운 부담을 모두가 떠안게 됐다.

통계청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모두 32만7000가구가 지하(반지하 포함)에 살고 있다. 수도권에만 31만4000여 가구가 몰려 있다. 3인 가족을 기준으로 거의 100만명이 몹시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지내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참사 직후 서울시는 서울에서 지하·반지하는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존 건축물에 대해서는 최장 20년 간 유예기간을 주고 주거용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대책도 내놓았다. 현재의 지하·반지하는 세입자가 나간 뒤 비주거용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한 대책이다. 대책이 즉각적인 실효성을 가지려면 더 과감히 속도를 내는 수밖에 없다. 지하·반지하 거주자에 대해 서둘러 정부 보유 임대주택 등 안전이 보장된 주거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집주인이나 민간에 맡겨서는 부지하세월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주거 난민'을 만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사정이 이럴진대 윤 대통령을 비롯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도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등 당국자들은 지하·반지하 단 하루라도 실생활 체험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국민 모두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근본적이면서도 상세하고 빈틈없는 대책을 모두의 공감을 얻어 제시하기를 기대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은 이 상황에서 설득력이 전혀 없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