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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인물탐구] 신동빈 “분골쇄신 나부터”…롯데 바꾼다

[CEO 인물탐구] 신동빈 “분골쇄신 나부터”…롯데 바꾼다

기사승인 2022. 06. 2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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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회장, 정적인 성향에 승부사 기질도 지녀
'형제의 난' 땐 은둔형 리더서 스킨십 경영 강화
팬데믹 위기 속 과감한 베팅…글로벌기업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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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인물탐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대표이사가 내정되면 부임 전 두 가지를 선물한다. ‘청사탁영 탁사탁족(淸斯濯纓濁斯濯足·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이란 문구가 표구된 액자와 나무로 만든 닭 ‘목계’다. 모두 주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솔선수범하며 겸손한 자세를 가지길 희망하는 뜻을 담고 있다. 한번도 직원들에게 큰소리를 내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일 없이 늘 존대하고 겸손한 자세로 대하는 신 회장의 성향과도 닮아 있다.

신 회장은 평소 매일 집무실에서 서예를 즐길 정도로 정적인 성향을 지니기도 하지만 야구·스키 등 스포츠를 사랑하는 모습에서는 승부사적 기질도 지녔다. 이러한 양면성은 롯데를 경영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2015년 ‘형제의 난’이 촉발되기 이전까지는 ‘은둔형 황태자’란 별명을 지녔을 정도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조용히 부친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경영방침을 따랐다. 그렇다고 수동적이지만은 않았다. 과감한 베팅으로 M&A를 성사시키며 롯데를 재계 5위의 반열에 올리는 추진력도 보였다.

확실히 신동빈 회장 체제의 롯데는 달라지고 있다. 전기회로보다 더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는 이제 ‘0’이 됐고, 기업공개(IPO)도 적극적이다. 유통에 치중됐던 사업구조도 화학에서 이제는 바이오까지 넘나들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보수적인 기업문화도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는 외부인사까지 영입하며 순혈주의도 깨졌다.

◇ 형제의 난 - 은둔형 리더서 적극적인 스킨십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사진 촬영하고 있는 신동빈 회장 (2019)
신동빈 회장이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신 회장은 직원들과 식사할 때 반주를 곁들이기도 하는 등 친근한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제공=롯데지주
2015년 8월 12일은 롯데그룹에 있어 역사적 날이다. 형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으로 70년 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롯데의 실체가 만천하에 공개되며 신동빈 회장이 오랜 침묵을 깨고 국민 앞에 나서 지배구조 개선과 준법경영을 약속한 날이다. 오랜 외국생활로 능숙하지 않음에도 한국어로 발표했다는 점에서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롯데 관계자는 “긴장을 많이 해서 억양이나 발음이 정확하지 못했지 평소 회의나 직원들과 소통할 때 전혀 문제없다”고 강조했다.

형제의 난으로 어수선한 그룹을 다잡은 건 신 회장이다. 참모진의 만류에도 서툰 한국어로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할 결단을 내린 신 회장은 빠른 의사결정으로 지주회사 설립, 순환출자고리 해소 등 롯데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2015년 8월에만 해도 276개의 순환줄자 고리는 2개월 만에 67개로 줄더니 2017년 10월 13개, 2018년 2월 롯데GRS·롯데상사·대홍기획·한국후지필름·롯데로지스틱스·롯데아이티테크 등 6개 비상장사 투자사업부문을 롯데지주에 통합하면서 ‘0’으로 만들었다.

직원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갔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출퇴근도 하고 MZ세대들의 셀카 요청도 기꺼이 응한다. 아버지를 닮아 현장경영도 열심이다. 건설 현장을 찾아서는 현장 직원들과 반주도 곁들일 만큼 잘 어울린다. 주량이 쎄지는 않지만 폭탄주 1~2잔으로 분위기를 맞출 줄 안다.

자신이 읽은 책을 추천하기도 한다. 신 회장은 2013년 전 계열사 팀장급 직원 2000여명에게 혁신 관련 서적 ‘리버스 이노베이션’을 선물하기도 했다. 혁신 전문가 고빈다라잔 교수가 역혁신 이론을 설명하고 이를 도입해 성공한 사례를 언급한 책으로, 이를 원서로 접한 신 회장은 시사점이 많은 내용이라 생각해 임직원들에게 추천했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의 위기가 닥친 2020년에는 그룹 리더들이 나침반으로 삼을 만한 도서로 ‘그로잉 업(LG생활건강 멈춤 없는 성장의 원리)’을 추천하는 등 현장과 책에서 경영의 답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 코로나19 - 또 한번 승부사적 기질 발휘
2021년 6월 신동빈 회장, 롯데케미칼의 대구 수처리공장 방문
지난해 6월 롯데케미칼의 대구 수처리공장을 방문한 신동빈 회장(오른쪽). 직원들은 신 회장이 시간 날 때마다 현장을 방문한다고 입을 모은다. 주말에는 백화점 점포 등도 자주 들린다는 설명이다. /제공=롯데지주
신 회장이 롯데에 합류한 이후 롯데의 자산은 비약적으로 커졌다. 롯데 정책본부 본부장으로 취임한 2004년 24조6000억원 규모였던 그룹 자산은 2021년 기준 121조6000억원으로 거의 5배나 불었다.

일본, 미국서 공부하고 노무라증권 런던지점에서 1981년부터 1988년까지 근무하며 쌓은 국제 금융 감각을 키운 영향이 컸다. 신 회장은 부친의 반대에도 롯데쇼핑을 2006년 한국과 영국 증권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시켰고, 이후에도 M&A로 그룹의 성장모멘텀을 만들었다.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즐긴다. 카드대란으로 국내 경제가 전반적으로 혼란에 빠졌던 2003년에 1조8000억원을 투입해 현대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을 인수하며 화학 사업에 뛰어들었다. ‘형제의 난’이 한창이던 2015년에도 삼성그룹과의 빅딜을 추진해 2조8000억원에 삼성정밀화학과 삼성BP화학, 삼성SID의 케미칼사업부문을 사들였다.

화학은 현재 롯데그룹 중심 사업축이었던 유통까지 제치고 주력 사업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에는 롯데케미칼의 매출이 처음으로 롯데쇼핑을 제쳤다. 지난해 롯데케미칼과 롯데쇼핑의 매출액은 각각 18조1205억원, 15조5736억원으로 2조5469억원 차이를 보였다.

중국의 사드보복, 일본불매운동부터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외적 충격에 취약한 유통보다 고부가가치 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 1990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 입사하며 한국롯데와 인연을 맺은 영향도 있다.

신 회장은 그동안 주춤했던 M&A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이번엔 바이오와 모빌리티다. 향후 5년간 37조원 중 41%를 이 분야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롯데는 지난달 바이오법인 롯데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하고 최대 1조원을 투자해 CDMO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모빌리티 부문도 2025년 상용화 목표인 UAM(도심항공교통)과 전기차 충전 인프라 중심으로 투자한다.

최근 유럽 출장에서 헝가리 터터바녀 산업단지에 조성된 ‘롯데 클러스터’를 방문하고 이차전지용 양극박에 대한 1100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도 결정했다.

올 상반기 VCM(사장단 회의)에서 “미래지향적인 경영을 통해 신규 고객과 신규 시장을 창출하는데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 빠르게 실행되고 있는 셈이다.

롯데는 성장 테마인 헬스 앤 웰니스·모빌리티·지속가능성 부문을 포함해 화학·식품·인프라 등 핵심 산업군에 집중하면서도 코로나19 이후 위축됐던 유통·관광 산업 역량 강화를 위한 시설 투자도 확대할 계획이다.

◇ 집무실 또는 현장-경영계의 트렌드 세터

주말에 신 회장은 늘 롯데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점포를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인이 늘 현장과 가까이 하기 때문에 트렌드에도 밝을 수밖에 없다. 단순히 유행에 뒤쳐지지 않는 것을 넘어 미래 경영 대비 차원에서도 늘 귀를 기울이고 있다.

트렌드 및 사회현상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자세는 전 세계가 처음 겪는 코로나 팬데믹에서 진면목을 발휘했다.

코로나19 위기가 공포 수준으로 다가오던 2020년 5월. 신 회장은 코로나 이후에 대해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신 회장은 전 계열사 대표와 기획 담당 임원에게 ‘코로나19 전과 후(BC and AC)’ 사내용 도서를 배포했다. 애프터 코로나 시대를 선제적 준비할 수 있도록 롯데인재개발원과 롯데지주가 제작했다. 해당 도서는 과거 정치·사회·문화를 리셋하는 계기가 됐던 팬데믹, 20세기의 경제위기 등을 오늘날 코로나19 사태와 비교하고 코로나 종식 후 예상되는 사회 경제적 변화 모습을 다양하게 짚어내고 있다. 이후 롯데인재개발원은 책 내용을 바탕으로 전 직원용 영상 교육자료를 만들어 사내 전파했다.

‘위드 코로나’ 화두를 제시한 속도도 빨랐다. 이 시기에 약 2달간 일본에 머물렀던 신 회장은 현지 경제계 관계자들을 만나고 글로벌 상황을 면밀히 살피며 그룹의 전략 방향을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기존의 생활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며, 그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시장의 법칙과 게임의 룰이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은 소탈하고 소박한 인간미를 지니고 있다가도 사업에 있어서는 굵직한 인수합병을 주도하는 공격적인 경영스타일을 보인다”면서 “내수사업에만 치우칠 뻔한 롯데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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