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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조붓한 숲길 따라가면 물소리 ‘찰랑~’

[여행]조붓한 숲길 따라가면 물소리 ‘찰랑~’

기사승인 2021. 07. 2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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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동구래마을~서오지리 연꽃마을 산책
여행/ 화천
동구래마을에서 금광굴 가는 길. 조붓한 오솔길 옆으로 북한강이 유유히 흐른다./ 김성환 기자
강원도 화천 ‘산소 100리길’은 자전거 라이딩 코스로 유명하다. 북한강을 끼고 이어지는 약 42km의 자전거 도로를 따라 수려한 풍경이 꼬리를 문다. 이 중에는 산책에 적당한 구간도 많다. 하남면의 동구래마을에서 서오지리 건넌들 연꽃마을을 연결하는 약 3km도 이런 구간이다. 한두 발짝 옆에서 ‘찰랑찰랑~’ 물소리가 들린다. 사진찍기 좋은 야생화 정원, 눈이 시원해지는 연밭도 있다. 볕이 강한 계절에는 자전거가 뜸하다. 한낮을 피해 기웃거릴만하다.

여행/ 화천
바람이 없는 날에는 호수처럼 잔잔한 북한강 수면에 풍경이 오롯이 반영된다./ 김성환 기자
길 얘기부터 하면, 동구래마을에서 금광굴까지 약 1.8km가 백미다. 북한강의 정취가 제대로 느껴진다. 조붓한 오솔길에서 불과 2~3m 거리를 두고 강물이 찰랑거린다. 춘천댐이 물길을 가로막은 덕에 강이 호수 같다. 바람이 사라지면 수면이 잔잔해진다. 미동 없는 수면은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흙도, 건물도 물을 이기지 못할 때가 있다. 이때 물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물의 본성은 고요하고 순하다. 급한 경사를 만나 급하게 흐르고 낭떠러지를 만나 우레처럼 쏟아질 뿐이다. 그래서 움직임이 없는 물을 보면 마음도 순해진다. 팔도에 물길을 따라 가는 길은 많지만 사람을 순하게 만드는 길은 흔치 않다. 멀리서 강을 바라보는 것과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강을 느끼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뭍에 부딪치는 미세한 물결의 움직임에도 가슴이 뛴다. ‘물을 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에 빨리 동화됐다는 의미다. ‘힐링’은 이런 거다. 자연의 작은 변화에 설레는 것. 화천은 물 맑은 땅이다. 북한강과 파로호가 빚어내는 풍경이 수려한 ‘물의 나라’다. 이 길을 걸어보면 알게 된다.

여행/ 산소길
동구래마을에서 금광굴 가는 길. 녹음 짙은 나무가 우거졌다./ 김성환 기자
이 구간은 숲도 좋다. 한낮 뙤약볕이 우거진 활엽수를 쉽게 뚫지 못한다. 늘어진 나뭇가지가 수면에 걸친 풍경도 좋고 길에 핀 야생화도 반갑다. 걸어본 사람 중에는 “나무가 울창한 숲길 옆으로 강이 흐르는 운치있는 길”이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이도 있다. 바람 없이 맑은 날에는 풍경도 그림 같다. 하늘과 산과 구름이 오롯이 수면에 반영된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봄, 가을도 좋고 비오는 날에도 운치가 있단다.

판판한 길은 걷기도 편하다. 산책 삼아 걷는 길은 편해야한다. 힘이 달리면 풍경이 눈에 안 들어온다. 입도 무거워진다. 이 길에선 풍경을 음미하고 사는 얘기를 하며 꽃과 나무의 이름을 두고 머리를 맞댈 수 있다. 아이들이나 꽃단장한 연인도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여행/ 화천
여름 한낮에도 서늘한 공기가 느껴지는 금광굴/ 김성환 기자
길의 중간 지점에 있는 금광굴은 ‘훌륭한’ 쉼터다. 금을 캐던 굴인데 한낮에도 한기가 뿜어져 나온다. 입구 앞에 서면 땀이 절로 식는다. 그래서 인지 입구 앞에는 벤치도 있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금광열풍’이 불었다. “당시 우리나라 금 생산량은 292톤으로 세계 여섯 번째에 달했다”고 안내판은 소개한다. 1970년대 들어 경제성이 떨어진 탓에 대부분의 금광이 폐광이 됐단다. 이 길 주변에도 금광이 제법 있었단다. 댐이 생기면서 대부분 수몰되고 남은 곳이 여기다. 금광굴에는 박쥐가 산다. 입구에 다가가면 ‘퍼덕~’ 하는 박쥐의 날개짓에 놀랄 수 있다. 금광굴에서 서오리지 건넌들 연꽃마을까지 약 1.2km 구간의 운치는 좀 떨어진다 대신 시야가 탁 트인다. 나무 덱으로 조성된 수변 자전거 도로를 지나면 막바지에 다시 흙길이 나타난다. 싱싱한 연밭도 등장한다.

길은 오래전부터 풍경 좋고 자연이 청정했나 보다. 길에는 산소 100리길 말고도 재미있는 이름이 붙어있다. 절반은 ‘금 캐러 가는 물위 야생화길’, 나머지 절반은 ‘연꽃과 함께하는 수변복원길’이다. 10여년 전에 화천군은 풍경이 수려한 생태탐방로 23곳을 선정해 ‘동려이십삼선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23명의 신선이 함께하는 길’이라는 의미인데 이 길도 포함된다. “동려이십삼선로는 조성된 지 오래됐지만 동구래마을과 서오지리 연꽃마을 구간은 화천 산소100리길에도 포함돼 있어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화천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여행/ 동구래마을
동구래마을/ 김성환 기자
여행/ 동구래마을
동구래마을/ 김성환 기자
길의 시작과 끝이 되는 동구래마을과 서오지리 건넌들 연꽃마을이 여정에 잔잔한 재미를 더한다. 동구래마을은 야생화 정원이다. ‘동구래’는 ‘동그란’에서 비롯됐다. 씨앗과 꽃의 동그란 형상을 상징한단다. 화천군 관계자는 “촌장님이 조성하고 관리하다 힘이 부쳐 몇 해 전부터 군에서 관리한다”고 했다. ‘촌장님’은 이호상(64)씨다. 산에 다니며 야생화에 빠진 것이 계기가 돼 황폐한 땅에 야생화 정원을 일궜단다.

유명한 수목원만큼 규모가 크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봄, 가을이 좋다지만 여름에도 제법 화사하다. 햇살을 잔뜩 머금고 핀 여름꽃은 봄꽃, 가을꽃 못지않게 빛깔이 곱고 맑다. 조붓한 탐방로를 따라가면 주황색 범부채, 보라색 리아트리스, 분홍색 드린국화 등이 반긴다. 중간중간 전시된 조각품과 아기자기한 조형물은 사진촬영의 배경으로 어울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여행/ 서오지리 연꽃마을
서오지리 건넌들 연꽃마을/ 김성환 기자
여행/ 원천상회
동구래마을 가기 전에 만나는 ‘원천상회’/ 김성환 기자
서오지리 건넌들 연꽃마을의 연밭 역시 2003년부터 주민들이 가꾼 산물이다. 올여름은 조금 부산하다. 갈대 제거 작업이 막 끝난 탓에 듬성듬성 빈 자리가 많다. 화천군 관계자에 따르면 주민들이 습지에 연을 심고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놓아 둔 탓에 여름마다 갈대가 무성하게 자랐단다. “갈대를 잘라내면 또 자라기 때문에 아예 흙을 긁어 팠다. 마무리가 되고 수위가 차면 다시 꽃이 볼만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래도 연밭 가장자리에는 연꽃이 화사하다. 꽃이 없어도 좋다. 초록이 싱싱한 연잎만 봐도 눈이 상쾌해진다.

하나만 추가하면, 동구래마을 가기 전에 원천상회가 나온다. ‘썩지 않는 것은 뭐든 판다’는 동네 슈퍼마켓이다. 올해 초 배우 조인성과 차태현이 ‘사장’으로 등장하는 TV 프로그램의 무대가 되며 유명해졌다. 프로그램이 ‘대박’이 나며 찾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요즘은 뜸해졌다. 주인 할머니는 “폭풍이 지나가고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종종 찾아오니 서운함 보다는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예쁜 ‘동네 슈퍼’ 지붕 그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쪽쪽~’ 핥으며 게으름을 부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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