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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맑은 꽃잎마다 군자의 향기...당진 합덕제

[여행] 맑은 꽃잎마다 군자의 향기...당진 합덕제

기사승인 2021. 07. 0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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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합덕제
합덕제에 연꽃이 활짝 피었다. 이달 중순쯤 절정에 달할 전망이다./ 김성환 기자
연꽃 소식 들려온다. 충남 당진 합덕제에도 ‘꽃융단’이 깔렸다. 여름꽃 중에 연꽃만큼 화려한 것도 없다. 볕을 가득 머금은 꽃송이는 크고 빛깔도 곱다. 또 오래 피어 있으니 안달하지 않아도 된다. 꼬여버린 일상에선 예쁜 꽃 한 송이도 큰 위안이 된다.

올여름 연꽃은 예년보다 일주일 이상 빠르다. 합덕제도 벌써 절반이 꽃밭이다. 연꽃은 꽃보다 큰 잎이 먼저 보이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멀리서도 꽃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주차장에서부터 꽃만 보인다.

여행/ 합덕제
연은 진창에 뿌리를 내리고 힘겹게 꽃대를 밀어올려 뙤약볕에 꽃을 피운다. 연꽃은 ‘군자의 꽃’이다./ 김성환 기자
여행/ 합덕제
연못에 핀 수련/ 김성환 기자
합덕제는 인근 평야에 물을 대던 저수지였다. 오래됐다. 당진시 관계자는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성종 때에 왕과 신하들이 대화하면서 ‘전조’ 때 부터 축조됐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전조는 조선의 앞선 왕조인 고려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알아주는 저수지였다.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중수, 보수에 관한 기록이 등장한다. “호남 지방의 벽골제와 호서 지방의 합덕지, 영남 지방의 공검지, 관북 지방의 칠리, 관공 시방의 순지, 해서 지방의 남지, 관서 지방의 황지와 같은 제언(둑)은 나라 안에서 큰 제언이라고 칭해지는데...”라는 대목도 나온다. 농경사회에서 치수(治水)는 중요했다. 나라에서도 공들여 지켜봤다.

합덕제는 1960년대 예당저수지가 생기기 전까지 소들평야(합덕우강 평야)에 물을 댔다. 평야는 여전히 넓다. 강원도처럼 산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지금도 복판에 나가면 바람이 ‘쌩쌩~’ 분단다. 평야가 광활했으니 저수지도 작지 않았을 거다. 안내판에는 “제방 길이 1771m, 둘레 8~9㎞에 이르는 약 30만평 규모”라고 적혀있다. 이때에도 연(蓮)이 많았다. 조선 영·정조 때 세워진 합덕제중수비에는 합덕제가 ‘연제’로 표기돼 있다. 연이 많은 둑이란 의미다. 예당저수지가 생긴 후에는 저수지의 기능을 잃었다. 메워져 논이 됐다. 2000년대 초에 제방이 복원됐다. 연도 이 무렵 심어졌다. 약 9만평이 연꽃단지다. 구경하려면 2~3시간 잡아야 한다.

여행/ 합덕제
연못으로 뻗어 있는 탐방 덱은 사진촬영 포인트다. / 김성환 기자
합덕제 연꽃단지에는 연이 빽빽한 연밭이 있고 여백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연못도 있다. 홍련, 백련은 큰 꽃이 탐스럽고 수면에 붙어 피는 수련은 작지만 화사하다. 수련 구경은 오전이 낫다. 볕이 강하면 잎이 닫혀서다. 수련의 ‘수’는 ‘잠잘 수(睡)’다. 한낮에 잠을 자듯 꽃을 오므린단다.

연꽃은 ‘휙~’ 지나며 볼 것이 아니다. 천천히, 샅샅이 음미해야 한다. 이유가 있다. 연은 진창에 뿌리를 내리고 억척스럽게 꽃대를 밀어 올린 후 여름 뙤약볕에 기어코 꽃을 피운다. 화사한 꽃은 인고의 시간이 빚은 산물이다. 또 볼품없는 질퍽한 땅에서도 청정하게 자란다. 그래서 버릴 것도 없다. 뿌리는 반찬, 잎은 밥을 짓는 데 쓰인다. 꽃은 차(茶)가 되고 씨앗은 약이 된다. 그래서 ‘군자의 꽃’이다. 옛 선비들은 매화만큼 연꽃을 좋아했다. 성리학의 기초를 다진 중국 북송의 주돈이(1017~1073)는 ‘애련설’에서 “연은 진흙에서 났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깨끗이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다”고 연꽃을 예찬했다. 퍽퍽한 일상에선 이런 꽃 한 송이 가슴에 품어야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꽃이 덜 핀 연밭도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큰 연잎 때문에 사위가 온통 초록이다. 어찌나 싱싱한지 보기만 해도 눈이 개운해진다.

여행/ 합덕제
올방개와 연꽃이 만드는 풍경이 몽환적이다. 초록이 싱싱하고 꽃이 없어도 눈이 즐겁다./ 김성환 기자
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줄, 올방개 같은 벼과 식물도 많다. 합덕제 연꽃단지를 조성한 이계영(65)씨는 “합덕제는 농경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합덕수리민속박물관, 농촌테마공원, 생태관광체험센터가 인근에 있으니 연계해 구경하면 더 유익하단다. 줄과 올방개는 식용작물이다. 올방개는 지금도 덩이줄기를 갈아 묵으로 쑤어 먹는다. 물채송화나 물옥잠화 같은 수생식물도 보인다. 초록 사이에 수줍게 숨은 물옥잠화의 보라빛 꽃이 가슴을 또 뛰게 만든다. 탐방로 중간중간에는 초가 그늘집이 있어 쉬어 갈 수 있다. 연밭 가운데로 뻗은 전망 덱은 ‘인증샷’ 포인트로 인기다. 연꽃단지 주변은 버드나무가 에둘렀다. 가지가 길게 늘어진 자태는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서울에서 온 40대 주부는 “버드나무 그늘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보는 연꽃이 제멋”이라고 했다. 종종 왜가리도 날아다닌다.

여행/ 합덕성당
합덕성당. 충청도에 처음 들어선 성당이다/ 김성환 기자
‘버그내 순례길’을 걷다가 연꽃 핀 것을 보고 들르는 사람들도 있다. 버그내 순례길은 솔뫼성지에서 합덕성당을 지나 신리성지에 이르는 약 13km의 길이다. 당진의 천주교 성지를 연결했다. 합덕성당이 합덕제 뒤에 있다. 충청도에 들어선 최초의 성당이다. 1890년 예산에서 양촌성당으로 시작해 1899년 현재 위치로 옮겨오며 이름도 바뀌었다. 본당 건물은 1929년에 새로 지어졌다. 붉은 벽돌의 고딕양식이 이국적이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사진촬영 명소로 입소문이 났다.

합덕제는 여름에만 찾을 일은 아니다. 사계절이 아름답다. 합덕수리박물관 관계자는 “봄에는 제방을 따라 유채꽃이 화려하게 피고 가을에는 황금빛 들판이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다. 겨울에는 고니 떼가 날아든다”고 했다. 이 계절엔 연꽃이 주인공이다. 이달 중순쯤이 절정이다.

여행/ 골정지
골정지와 초가정자 ‘건곤일초정’/ 김성환 기자
당진에선 면천면 면천읍성 옆의 골정지도 연꽃 예쁜 곳으로 통한다. 연못은 작다. 하지만 연못 가운데 ‘건곤일초정’이라는 초가 정자가 있는데 정자와 연꽃이 어우러진 풍경이 운치가 있다. 연못과 정자는 조선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있던 1800년에 만들었다. 원래의 정자는 일제강점기에 사라졌고 지금의 것은 2006년에 복원됐다. 합덕제보다 꽃이 조금 늦다.

여행/ 면천읍성
면천읍성 동네책방 ‘오래된 미래’(왼쪽)와 ‘진달래상회’/ 김성환 기자
여행/ 면천읍성
100년 된 우체국 건물에 들어선 카페 ‘미인상회’/ 김성환 기자
골정지도 골정지지만 면천읍성 보러 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 1439년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는데 2014년부터 복원이 진행 중이다. 남문과 일부 성곽 등이 제모습을 찾았다. 읍성을 복원하다 보니 기존 성상리 동네가 성 안에 들어 앉은 형국이 됐다. 지금은 ‘성안마을’로 불린다. 성안마을은 SNS에서 사진촬영 명소로 떴다. 최근 2~3년 새 옛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들이 생기며 감성여행지로 주목받은 덕이다. 100년 된 우체국 건물에는 카페 ‘미인상회’가, 면천의 두 번째 우체국에는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이 자리 잡았다. 자전거포였던 곳에는 동네 책방 ‘오래된 미래’가 들어서고 대폿집 자리에는 ‘진달래상회’가 문을 열었다.

오래된 집마다 붙은 문패도 훈훈하다. ‘과자, 음료수, 라면 모두 모두 파는 곳...따뜻한 정은 덤으로 드려요’(창성상회), ‘부지런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알콩달콩 하우스’(면천최초우체국장 댁), ‘전기수리? 최고! 읍성주변봉사? 최고! 그 중 으뜸은 뭐니뭐니해도 할아버지의 맘씨랍니다’(금성전파사) 같은 식이다. 남문 앞에는 콩국수 가게가 많은데 산책 후 허기를 채우기 딱 좋은 곳이다.

합덕제, 골정지는 연꽃 예쁜 곳이 맞다. 하나 더 보태면 ‘옛것’이 되살아나 풍기는 곰삭은 향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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