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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투 유머펀치] 호질무색(虎叱無色)

[아투 유머펀치] 호질무색(虎叱無色)

기사승인 2021. 06. 2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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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논설위원
아투유머펀치

고매한 학식과 인품의 도덕군자임을 자처하던 선비가 절개를 지키며 산다는 과부와 한밤중에 정을 통하다가 딱 걸렸다. 과부 또한 각자 성(姓)이 다른 아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들에게 들켜 혼비백산 줄행랑을 치던 선비가 그만 분뇨 구덩이에 빠져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앞에는 호랑이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온갖 변명으로 목숨을 구걸하는 선비의 위선에 역겨워진 호랑이는 호되게 질책하고 가버렸다.

새벽녘 들에 나온 농부가 그 꼴을 보고 “여기서 뭘 하느냐”고 묻자 그제야 고개를 든 선비는 금세 허세를 부리며 자신의 구린 행색을 합리화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의 한문 단편소설 ‘호질(虎叱)’은 당시 지배계층의 곡학아세와 표리부동한 삶을 날카롭게 풍자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양반·선비마당에서도 그들의 도덕적 위선을 질타하는 대목이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젊은 여성인 부네를 서로 희롱하기 위해 지체와 학식을 과장하던 양반과 선비가 ‘소불알이 양기에 좋다’는 백정의 말에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다 땅에 떨어트린다. 부네에게도 소불알에도 처음에는 관심이 없는 척 외면했던 양반과 선비를 향해 할미가 일갈을 한다. “양반도 지부랄이라 카고, 선비도 지부랄이라 카고... 내 평생 소부랄 하나 가지고 싸우는 꼬라지는 첨본다 첨봐. 예끼 몹쓸것들아...”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는 의원 12명에 대해 탈당과 출당을 권유한 것에 대해 야권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해당 의원들의 변명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비례대표 의원에게 출당의 방식으로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한 것도 꼼수라는 지적이다. 탈당·출당을 권유한 지 열흘이 넘도록 당을 떠난 의원도 없다. “결과는 보나마나 또 유야무야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민주당 대표의 이번 조치는 ‘예상 밖의 초강수’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다양한 행태의 부동산 내로남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한 미봉책으로 보는 시각도 적잖다.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척하던 사람들이 구린 의혹을 감춘 것도 모자라 파렴치한 변명까지 늘어놓는다면 국민을 두 번 우롱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선비를 질책하던 호랑이, 양반을 나무라던 할미가 무색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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