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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화가 황재형 “막장은 태백뿐 아니라 서울에도 있다”

광부화가 황재형 “막장은 태백뿐 아니라 서울에도 있다”

기사승인 2021. 05. 1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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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서 개인전...8월 22일까지
황재형 작가
황재형 작가./제공=국립현대미술관
한국 리얼리즘 미술 거장 황재형은 1980년대 초반 강원도에 정착해 광부로 일한 경험을 사실주의 시각으로 그려낸 ‘광부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1982년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한 황재형은 대학 시절 민중미술 소그룹 ‘임술년’으로 활동하면서 그린 ‘황지330’(1981)으로 중앙미술대전 장려상을 받았다. 높이 2m가 넘는 캔버스에 1980년 황지탄광에서 매몰사고로 사망한 광부의 낡은 작업복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른 나이에 화단의 주목을 받게 됐지만 그는 1982년 가을 강원도로 갔다. 태백, 삼척, 정선 등지에서 3년간 광부로 일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탄광촌의 노동자들과 주변 인물들의 삶을 그렸다. 결막염이 심해져 광부를 그만둔 후에도 강원도에 남아 노동운동과 문화운동을 벌이며 작업을 계속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황재형: 회천回天’전을 8월 22일까지 서울관에서 선보인다. ‘광부화가’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황지330’과 통리재를 배경으로 10년에 걸쳐 완성한 ‘백두대간’ 등 대표작들과 대형 신작 설치작품까지 65점을 소개하는 자리다.

전시명 ‘회천’(回天)은 ‘천자(天子)나 제왕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다’ 또는 ‘형세나 국면을 바꾸어 쇠퇴한 세력을 회복하다’는 뜻의 단어다. 이는 예술의 사회적 효용성 또는 변혁의 가능성을 그림으로 증명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황재형은 “막장(갱도의 막다른 곳)이란, 인간이 절망하는 곳이다. 막장은 태백뿐 아니라 서울에도 있다”며 탄광촌에서의 삶을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장했다. 그는 인간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그것의 회복을 꿈꾸는 메시지를 이번 개인전으로 전달한다.


황재형, 황지 330, 1981
황재형의 1981년작 ‘황지 330’./제공=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광부와 화가’ ‘태백에서 동해로’ ‘실재의 얼굴’ 등 3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인물 작품이, 2부에서는 풍경 작품이 주를 이루고, 3부는 인물과 풍경을 함께 선보인다.

1부 ‘광부와 화가’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그려낸 탄광촌의 노동자와 주변인의 인물 초상이 중심을 이룬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탄광촌의 폐품을 오브제로 사용하거나 철망이나 비정형의 합판을 캔버스로 활용한 작품들도 볼 수 있다.

2부 ‘태백에서 동해로’는 황재형이 1980년대 중반 광부를 그만두고, 1989년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폐광이 늘어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관조자로서 삶의 터전을 바라보는 1990년대 이후 시기를 담고 있다. 탄광촌뿐 아니라 강원도의 대자연을 그린 풍경화로 구성됐다. 석탄가루와 오물이 흐르는 탄천 위로 노을이 지는 풍경을 그린 ‘작은 탄천의 노을’, 폭 5m에 달하는 ‘백두대간’ 등을 선보인다.

3부 ‘실재의 얼굴’은 2010년대 황재형이 지역을 벗어나 초역사적 풍경과 보편적인 인물상을 그리고, 1980년대에 천착했던 주제를 머리카락을 이용해 새롭게 풀어내는 시기를 담고 있다. 화면에는 탄광촌의 광부와 주변 풍경이 재등장하는 한편 세월호나 국정농단 사건과 같은 동시대 이슈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은퇴한 광부를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린 ‘아버지의 자리’, 유화로 그린 광부의 초상을 머리카락으로 새롭게 작업한 ‘드러난 얼굴’ 등이 공개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광부화가 황재형이 그려낸 사실적 인물과 광활한 대자연, 초역사적 풍경은 오늘의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며 “이번 전시는 지난 40년 동안 사실적인 묘사를 바탕으로 현실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한 그의 발자취를 되짚어보고 한국 리얼리즘의 진면목과 함께 미술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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