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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30년 세월의 알찬 결실, 글로리아오페라단 ‘아이다’

[손수연의 오페라산책]30년 세월의 알찬 결실, 글로리아오페라단 ‘아이다’

기사승인 2021. 05. 1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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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인연이 빚어낸 조화로운 앙상블 돋보여
오페라 아이다1
오페라 ‘아이다’의 한 장면./제공=글로리아오페라단
어느 분야에서건 30년을 계속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우리나라 공연예술계처럼 열악하고 부침이 심한 곳에서 지속된 것이면 더욱 특별한 일이 된다. 1991년 창단된 글로리아오페라단(단장 양수화)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1991년 창단하여, 1992년 갈라콘서트, 1993년 첫 번째 오페라 ‘투란도트’를 무대에 올리면서 시작된 여정은 올해 제12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개막작인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오페라 총 31작품, 124회 공연, 콘서트 100회 이상의 공연 기록을 남겼고, 오페라 ‘춘향전’ 등으로 해외에서도 성공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한 시대와 대중을 위한 문화예술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지속가능성이다. 한국 오페라계의 상황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민간단체가 얼마나 고군분투 속에 오늘까지 버텨왔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리아오페라단이 지나온 발자취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시작됐던 대한민국 오페라 3세대의 역사와 흐름을 같이 한다. 올해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은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을 취소하거나 중단했던 지난해의 충격을 딛고 ‘아이다’를 시작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7~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아이다’는 지휘자 카를로 팔레스키를 제외하고는 성악가, 연출가 등 전원 우리나라 제작진으로만 꾸려졌다. 팔레스키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하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어, 어찌 보면 이번 오페라만을 위해 초빙한 외국 제작진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지만 이를 글로리아오페라단과 우리 오페라계가 변화하는 조짐으로도 해석하고 싶다.

글로리아오페라단은 그동안 외국의 유명 연출자나, 주역 성악가, 지휘자 등을 초빙해 유럽 수준의 오페라를 공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주로 ‘투란도트’ ‘토스카’ ‘나비부인’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청교도’ 등등 벨칸토와 사실주의 오페라를 넘나들며 대작 중심의 정통 오페라무대를 지향했다. 특히 글로리아오페라단이 출발하던 시기는 성악가나 연출가 등 인적 자원을 서구에 의존해야만 제대로 된 공연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 오페라계의 인력만으로도 충분히 완성도 높은 오페라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도래 했다. 이번 ‘아이다’는 그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무대였다.

첫 번째 견인차는 성악가들이라 할 수 있다. 아이다 역할의 소프라노 조선형은 해외 활동에 비해 국내에서 많이 알려진 소프라노는 아니다. 2018년 경남오페라단의 공연에서 아이다 역을 훌륭히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아이다를 어떻게 노래할지 궁금했다. 그녀는 1막의 아리아 ‘이기고 돌아오라’(Ritorna Vincitor)를 음정과 발성, 발음에 이르기까지 탄탄하고 명료하게 전달되도록 노래했으며, 날카로우면서도 청순함이 느껴지는 음색과 아이다 역에 걸 맞는 볼륨으로 빛나는 가창을 들려주었다. 또한 시종일관 불안정하고 번민에 시달리는 아이다의 복잡한 내면도 음악적으로 잘 그려냈다.

테너 김재형은 라다메스 장군 역할을 노래하며 한군데도 흠잡을 곳을 찾기 어려운 절창을 선사했다. 특히 첫 아리아 ‘정결한 아이다’(Celeste Aida)에서 그는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완벽한 강약조절과 유연하게 터져 나오는 고음을 들려주었다. 이후 오페라의 마지막까지 한 치도 흔들림 없이 최고의 라다메스를 노래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들과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암네리스 공주 역의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은 부드러운 음색으로 서리한 조선형의 아이다와 좋은 대칭관계를 이뤘다. 백재은은 연기력이 뛰어난 성악가로, 객석에서 암네리스의 질투심과 상실감을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다의 아버지 아모로나스 왕을 노래한 바리톤 한명원 역시 많지 않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가창과 연기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밖에도 이집트 왕 역할의 베이스 이준석, 람피스 역할의 베이스 이진수, 무녀장을 노래한 소프라노 이지현 등 조역들도 각기 제 몫을 다해 공연의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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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아이다’의 한 장면./제공=글로리아오페라단
그리고 이번 공연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또 다른 축은 신재희가 담당한 무대디자인이라고 하겠다. ‘아이다’는 장대한 규모의 그랜드오페라이고, 장면 전환이 잦은 편이다. 무대디자이너에게 ‘아이다’는 상당히 고민스러운 작품일 것이다. 신재희가 디자인한 무대는 여러 개의 직사각 기둥을 움직이게끔 배치하고 마지막 돌무덤도 입체적으로 구성함으로써, 공간을 효율적이고도 극적으로 활용했다. 또한 적절한 상형문자 장식으로 작품의 배경과 분위기에 충분히 빠져들게 해주었다. 또한 성악가들이 앞으로 전진 배치되는 미장센이 나오도록 유도해 객석이 사건과 음악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연출가 최이순은 인물과 인물의 대립, 내면의 고뇌 등을 설득력 있는 구도로 표현했다. 다만 생략 없이 온전하게 연주된 2막의 개선장면과 3막의 클라이맥스 부분을 좀 더 팽팽한 텐션을 가지고 끌고 갔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후반부에 들어 긴장이 고조되는 음악에 비해 긴박감이 떨어지는 장면들이 보였던 것은 아쉬운 점이다.

카를로 팔레스키가 이끄는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수많은 오페라를 공연한 관록의 오케스트라다. 팔레스키는 이번 공연에서 섬세한 세공보다는 ‘아이다’ 음악이 지닌 개성을 부각시키고자 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는 거침없는 지휘로 호쾌하고 화려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특징을 잘 살린 연주를 들려줬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우리나라 오페라음악의 약점으로 종종 지적되는 관악파트 문제들이 크게 개선됐다. 2막 개선장면에 나오는 트럼펫 솔로는 매끄러운 연주를 선보여 관객들의 만족감을 높였다.

지휘자 팔레스키, 연출가 최이순,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무대디자이너 신재희, 이우진이 지휘하는 메트합창단, 많은 성악가들 등등 이번 작품에 참여한 대부분의 제작진들이 글로리아오페라단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우리 오페라의 인적 자원들이다. 오랜 인연이 빚어낸 조화로운 앙상블이 글로리아오페라단 30년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 상명대 교수(yonu44@naver.com)


손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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